brunch

난강(蘭岡) 홍현희, 노은에서 태어나 세계로 나아간 이

충주의 가을 언덕에서

by 마루

난강 홍현희 문학비를 찾아서


감자공주 문학기행


충주의 하늘은 늘 조금 느리게 흐른다.

서울의 빽빽한 빌딩 대신, 이곳에서는 구름이 사람의 걸음 속도에 맞춰 움직인다.

그 느린 하늘 아래, 나는 오늘 한 작가의 이름을 찾아 노은 마을로 향했다.

비석 하나가 서 있다는 말에, 카메라를 들고 가을 들판을 따라 걸었다.


난강(蘭岡) 홍현희, 노은에서 태어나 세계로 나아간 이야기


비석의 이름은 홍현희(洪賢熙, 1947~2016).

호는 난강(蘭岡). 충북 충주시 노은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학과를 거쳐 미국 세인트존스 대학원에서 낭만주의를 공부한 문인이다.


그의 문학은 ‘순수한 인간성에 대한 회복’을 중심에 두었다.

젊은 시절엔 산업화의 소음 속에서도 ‘예스러운 삶의 숨결’을,

중년기엔 이민자로서의 인종·세대 간 갈등,

노년기엔 구한말과 분단 현실을 다룬 역사와 인간의 교차점을 그려냈다.


그가 남긴 대표작에는


「백자항아리」 — 『현대문학』 초회 추천작으로, 순백의 항아리를 통해 인간 내면의 고결함을 상징적으로 묘사.


「마지막 왕자의 첫사랑」 — 구한말 혼란기를 배경으로, 무너져가는 왕조의 애상과 인간의 의지를 그린 역사소설.


「Swallows」 — 미국 생활 중 집필한 영문 소설로, 북한 주민의 현실을 서정적으로 담아낸 문제작.


「손에 손잡고」 — 자전적 회고 소설로, 시간과 고향, 인간관계의 끈을 부드럽게 엮어낸 후기 대표작.


그는 서울과 충주,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평생 글로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한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머물던 곳은 중국 소주(蘇州).

병고 속에서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지금은 고향 언덕의 작은 비석 속에 새겨져 있다.


문학비 앞에서, 한 장의 사진

AI 합성시진입니다.


비석 앞에 서니 묘하게 시간이 멈춘 듯했다.

‘노은’이라는 두 글자, 그리고 그의 호 ‘蘭岡’이 햇살에 비쳤다.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그가 걸었던 길을 상상했다.

양정중학 시절, 학교 복도 끝에서 쓰던 첫 습작 노트.

연세대 캠퍼스 벤치에서 스승 오영수에게 들었던 문학의 무게.

그리고, 낯선 미국 땅에서 ‘낭만주의’를 공부하며 느꼈을 그리움의 결.


모든 장면이 하나의 필름처럼 내 머릿속에 돌아갔다.

문학비 옆에서 부는 바람이 마치 그 시절의 문장을 흩날리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책을 꺼내 들었다.

그의 글처럼,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한 줄로 남을 수 있을까.


고향의 언덕이 문학의 자리로 남다


이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현희 오빠’라고 부른다.

그의 동생이 살고 있는 집이 비석 옆에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마을의 공기는 여전히 잔잔했고, 그의 흔적은 그 속에 스며 있었다.

비석은 말이 없지만, 그 위에 내려앉은 낙엽들이 그를 대신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글은 결국, 사람이 사라진 후에도 남는 가장 인간적인 목소리다.’

그의 문학비 앞에서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 작가의 말


문학은 언어로 세운 기념비다.

돌에 새긴 글자는 바람에 닳지만,

사람의 글은 세월을 지나도 다시 읽힌다.


충주의 노은 마을에서 나는 또 하나의 ‘살아 있는 문학’을 만났다.

그의 이름이, 그가 걸었던 길이,

이 가을 들판 위에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 감자공주, 하이오렌지 필름


위치 정보


장소: 충북 충주시 노은리 일대


비석명: 난강 홍현희 문학비


참고 출처: 충북학 아카이브 - 문학인 난강 홍현희(1947~2016)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왜 영국만 ‘조세피난처’를 운영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