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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배우가 된 세상

쇼폼과 자아극장의 시대

by 마루


〈모두가 배우가 된 세상 — 쇼폼과 자아극장의 시대〉


어느 날 새벽, 나는 핸드폰 속의 나를 본다.

라면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와 웃고 있는 ‘나’가

작은 화면 속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다.

그건 분명히 나인데, 또 다른 인물 같다.

‘감자왕자’라는 이름으로 편집된 나의 분신.

요즘 세상은 묘하다.

무대는 사라졌는데, 배우는 늘었다.

길 위에서도, 식탁 위에서도, 심지어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사람들은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다.

쇼폼 영상은 이제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나를 연출하는 일상극’**이 되었다.


셀프 카메라, 셀프 세계관


예전엔 이야기 중심의 콘텐츠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 자신’**이 콘텐츠가 된다.

유머러스한 표정, 우스꽝스러운 자막,

때로는 진지한 독백까지 —

모두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은 연극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올린다.


‘감자왕자’라는 이름으로 나는 놀고,

감자공주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비춘다.

AI는 나의 표정을 다듬고,

음악은 감정을 완성시킨다.

이제 편집은 기술이 아니라, 자아의 미장센이다.


가짜 같지만 진짜 같은’ 현실


요즘 영상들은 어딘가 이상하다.

너무 매끄럽고, 너무 완벽하다.

AI는 잡티를 지우고, 목소리를 고르고,

조명까지 자연스럽게 채워 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완벽함 속에서

진짜 감정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연출된 현실(Directed Reality)’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가짜를 통해 진짜를 보여주는 기술.

결국 사람들은 기술이 아니라,

그 속의 인간적인 틈을 보고 웃는다.


콘텐츠의 중심이 ‘이야기’에서 ‘인물’로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이제는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보다 중요해졌다.

AI 알고리즘은 ‘스토리’보다 ‘페르소나’를 기억한다.

그래서 꾸준히 등장하는 캐릭터가

점점 더 많은 추천을 받는다.


그건 마치 디지털 신화의 탄생 같다.

‘감자왕자’는 이제 단순한 닉네임이 아니라,

AI 시대의 캐릭터 브랜드다.

그는 웃기고, 엉뚱하고, 조금은 철학적이다.

무대는 유튜브지만, 그의 이야기는 현실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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