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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열쇠, 그리고 열린 뒷문

가상화패

by 마루

보이지 않는 열쇠, 그리고 열린 뒷문


그날 뉴스 알림은 아주 조용했다.

“업비트 445억 탈취.”

문장을 읽는 데 1초, 의미를 이해하는 데 3초,

그리고 가슴이 내려앉는 데는… 0.2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instinctively 앱을 켰다.

로그인 → 잔고 → 새로고침.


숫자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대로’라는 사실이 안심이 아니라 의심으로 다가왔다.

“저기 털렸는데… 여긴 왜 멀쩡해…?”


마치 같은 동네 옆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우리 집은 멀쩡하니까 더 불안해지는 그런 느낌.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철통보안인데, 그게 뚫려?”

“은행도 아니고? 시스템이 구멍 난 거야?”


아니, 구멍이 난 게 아니다.

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그 문은 비밀번호도, 경비 시스템도 뚫지 않았다.

그저 열쇠로 열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확하게 복제된 열쇠로.


디지털 세계에서 ‘도둑’은 벽을 넘지 않는다.

대신, 벽을 만든 사람의 실수를 기다린다.


어느 직원이 새벽 커피를 마시며

메일함을 열었을 때—

제목은 이렇게 적혀 있었을 것이다.



열어본다.

첨부파일을 클릭한다.

화면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컴퓨터 안에서 조용한 문 하나가 열린다.


그 문을 통해 들어온 그림자는

바로 서버로 뛰지 않는다.

조용히, 천천히, 거의 예의 바른 속도로

길을 기억하고, 사람의 패턴을 기록한다.


며칠 뒤,

그 그림자는 결국 프라이빗 키—

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문자열에 다가간다.


그 키를 손에 쥔 순간,

그는 더 이상 해커가 아니다.


그는

“지갑 소유자”

다.


새벽 4시 42분.

서버는 여전히 초록 불을 깜빡이며

“정상 운행 중”이라고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시각,

솔라나 네트워크 위에서는

코인들이 줄지어 걸어 나가고 있었다.


도망도 아니고, 도둑질도 아닌,

공식 승인된 이동.


서명(Sign)은 완료되었고,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냉정하게 말했다.


“이 거래는 유효합니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블록체인은 한 번 승인된 거래를

되돌리지 않는다.

그것이 장점이자, 가장 잔혹한 규칙이다.


아침이 되자,

서버실은 이미 빈 자리만 남은 방이 되었다.

그곳엔 유리창도 깨져 있지 않았고,

누군가 억지로 문을 딴 흔적도 없었다.


문은,

정상적으로 열렸다.


그날 이후 나는 내 시드 구문을 다시 확인했다.

무려 영혼까지 담긴 단어 12개.

평소엔 그저 의미 없어 보이던 알파벳들이

그날만큼은 황금처럼 보였다.


웃기지 않은가?

어떤 세계에서는

다이아몬드보다, 금괴보다,

집 한 채보다,

텍스트 파일 하나가 더 값지다.


그래서 나는

메모장 잠금을 다시 걸고,

백업 파일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방식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건…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서 문턱은 강철로 만들어져 있지만

문은 너무도 쉽게 열렸으니까.


열쇠 하나로.

그 침묵 속에서.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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