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흙 (Revised)
토우의 숨결 — 꿈의 흙 (Revised)
꿈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찾아왔다.
깊은 밤, 창문을 흔드는 바람 소리와 함께 멀리서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
눈을 감고 있어도 방 안에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 안개는 조용히 번져가며 운해의 숨결과 뒤섞였다.
그 속에서 한 쌍의 손이 나타났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
살결보다 부드럽고, 피보다 진한 감각.
손가락 사이로 스며든 건 흙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평범한 흙이 아니었다.
강물 속, 수십 년 동안 돌과 물결에 깎이고 닳아
침묵 속에서 기억을 품은 흙.
그 흙은 오래된 숨을 간직한 것처럼
운해의 손끝에 달라붙었다.
운해는 눈을 뜨지 않은 채 그 형상을 느꼈다.
눈앞에는 형체가 있었다.
빛 같고, 숨 같고, 아직 이름이 없는 존재.
그는 그것을 ‘만들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잡히도록 내버려두었다.
첫 번째 토우가 세상에 나온 날은,
가을이 조용히 깊어지던 어느 저녁이었다.
운해는 자신이 무엇을 만들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두 손은 진흙으로 얼룩져 있었고,
방 한쪽에는 작고 서툴지만 어딘가 익숙한 표정을 지닌 토우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았다.
비례도 흐트러지고, 형태도 투박했다.
허나 누구든 그 앞에 서면, 한 가지 말을 내뱉곤 했다.
“눈이… 보입니다.”
토우의 눈은 단지 작은 점,
붉은 안료로 찍은 흔적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 시선에는
깊고 오래된 침묵이 있었다.
마치 부주의하게 바라보면 빠져버릴 것 같은.
절의 주지스님은 처음엔 못마땅해했다.
“법도 없이 만든 불상이라니. 꿈에 보였다 해서 그것을 믿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스님이 그 토우를 들여다본 순간,
말이 사라졌다.
그 침묵은 곧 경외였다.
한참을 지켜보던 스님이 조용히 물었다.
“이 흙은…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
운해는 잠시 머뭇이다가 답했다.
“강가에서 주웠습니다.
흙 속에… 금빛 알갱이가 보였습니다.”
그 말에 스님의 눈빛이 아주 희미하게 흔들렸다.
“…옛 전설이 하나 있지.”
스님은 마루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 강에는 오래전에 금을 실은 배가 가라앉았다고 한다.
속세의 재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깨달음을 바치기 위해 준비됐던 금이었다.
완성되지 못한 서원과 함께 물속 깊이 잠겼다더군.”
스님은 토우를 내려놓았다.
목소리는 기도처럼 낮고 단단했다.
“그 금이 세월을 견디며, 돌처럼 닳고, 모래와 섞이고,
마침내 흙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네가 만지는 건… 금의 기억이자,
완성되지 못한 불상의 꿈일지도 모르지.”
그날 이후 운해의 작업은 달라졌다.
그는 만들지 않았다.
기다렸다.
꿈이 오도록.
그 손길이 다시 자신의 손을 빌려 쓰기까지.
때론 하루였다.
때론 한 계절이었다.
때론 아무것도 오지 않는 침묵의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