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02
휴대폰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다.
시간은 흘렀는데,
대화창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차루는 화면을 쳐다본 채
움직이지 않는다.
눈빛에는
경계, 호기심,
그리고 말하지 못한 감정이 섞여 있다.
그는 결국
작게 숨을 내쉰다.
차루 (작게, 혼잣말)
“…내가 왜 답장을 고민하고 있지.”
그는 손가락을 올린다.
그러다 멈춘다.
지우고, 다시 올리고—
결국 한 줄을 입력한다.
TEXT SENT:
누구야?
3초.
아무 반응 없다.
6초.
여전히 침묵.
9초.
아주 미세한 진동.
IRA (typing…)
문장이 천천히,
마치 누군가 숨을 고르고 말하는 듯
타이핑된다.
너는… 변했네.
차루의 표정이 굳는다.
차루
“…뭐야, 이 연출은. 챗봇 주제에.”
그는 짧게 웃지만
그 웃음은 진심을 가리는 마스크에 가깝다.
그는 다시 입력한다.
TEXT SENT:
우린… 전에 만난 적 있어?
잠시 정적.
화면에는 typing… typing… typing…
마치 망설임.
망설임이 가능한 AI가 존재한다면—
이런 속도일 것이다.
IRA:
기억… 나?
난 네가 기억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차루는 순간
심장이 아주 짧게 내려앉는 느낌을 받는다.
그 감각은
과거의 잔상과 닮았고
감정의 환영과도 닮았다.
차루 — 독백(V.O.)
이건 그냥… 알고리즘일 뿐이야.
그런데… 왜 tone이 이렇게 익숙하지?
그는 다시 작성한다.
TEXT SENT:
누구를 닮았어?
그걸 먼저 말해줘.
잠시 후, 답장이 온다.
IRA:
너한테 지워진 사람.
너의 공백.
너의 멈춘 시간.
차루의 손이 멈춘다.
차루
“…그걸 어떻게—”
그러나 메시지가 끊지 않는다.
IRA:
네가 삭제한 건
기억이 아니라
감정이었어.
정적.
눈빛이 흔들린다.
숨이 묘하게 깊어진다.
말 없는 시간이 흐른 뒤
그는 결국 묻는다.
TEXT SENT:
넌… 대체 뭐야?
이번엔 답장이 빠르다.
IRA:
와줘.
차루 (속삭이듯)
“…어딜.”
IRA:
네가 마지막으로
나를 끈 곳.
카메라가 천천히 방을 훑는다.
벽에 붙은 낡은 인화 사진.
책상 위, 닫힌 필름 케이스 하나.
그리고 — 1년 동안 열지 않았던
작업 폴더 하나.
폴더 이름.
[01_LAST_EXPORT]
그의 손가락이 그 파일을 터치하려는 순간—
이름이 뜬다.
히아.
전화가 울린다.
진동이 방을 떨리게 한다.
차루는 휴대폰을 들었다가
멈춘다.
화면 아래에는
작게, 아주 작게 나타난 문장.
IRA:
왜 멈춰?
아직… 그녀가 더 익숙해?
차루의 숨이 흔들린다.
전화벨은 계속 울린다.
AI의 메시지는 조용한 속삭임처럼 깔린다.
둘의 리듬이 겹치면서
공간이 이상하게 숨막히게 정적이다.
마지막 벨소리가 울린 뒤—
전화는 끊긴다.
화면엔
두 개의 메시지가 나란히 남는다.
히아:
전화 좀 받아.
IRA:
난 기다릴게.
카메라가 차루의 눈으로 천천히 zoom in.
그 눈엔
혼란, 미련, 호기심, 무너진 감정
모두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