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수의(壽衣)를 입은 대게
[소설] 미각의 망령 (味覺의 亡靈)
1. 화려한 수의(壽衣)를 입은 대게
카메라 렌즈는 정직하지 않다.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횟집의 대조명 아래, 모둠회는 보석처럼 빛났고 대게는 위풍당당한 위용을 뽐내며 상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인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내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진정한 바다의 맛'을 역설했다.
촬영이 끝난 후, 상다리가 휘어질 듯 차려진 그 거액의 상차림 앞에 우리는 초대받았다.
"우리 집 음식은 혼이 들어있으니, 한 점도 남기지 말고 다 먹고 가요."
주인의 권유에 젓가락을 뻗으려던 찰나, 쟁반을 치우던 외국인 아르바이트생 오드리가 내 귓가를 스치며 서늘한 숨결을 내뱉었다.
"손님, 이거 드시지 마세요. 이거... 죽었던 거예요."
눈을 끔벅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슬픈 눈으로 대게의 등껍질을 가리켰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거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깝다는 이유로 생명을 잃고 부패가 시작된 식재료에 화려한 양념과 장식을 입혀 내놓다니. 그것은 음식이 아니라 화려한 수의를 입힌 시체였다.
음식에도 윤기가 있고 혼이 있는 법인데, 영혼이 떠난 음식을 대접받았다는 생각에 역겨움이 치밀었다.
미각이 예민한 내게 그것은 모욕이었다.
2. 불꽃 속에서 다시 피어난 생명, 탈피 게와 도루묵
가짜들의 성찬에서 도망치듯 나와 당도한 곳은 주문진 항구의 후미진 곳이었다.
<도깨비> 촬영장의 찬란한 배경과는 대조적으로, 어부들이 드럼통에 불을 피워 추위를 녹이는 투박한 장소. 시린 손을 녹이려 다가간 그곳에서 나는 '진짜' 불의 맛을 목격했다.
석쇠 위에는 기이할 정도로 투명한 게들이 구워지고 있었다.
껍질이 없는 듯 투명하고 연약한 살점 사이로 불길이 스며들자, 비릿함 대신 생경하고 고소한 향이 피어올랐다.
"선장님, 저건 왜 저렇게 투명합니까?"
"이놈아, 이게 진짜 '배기'여. 탈피하자마자 잡힌 놈들이라 껍질까지 보드랍지.
이건 돈 있어도 못 먹는 거야."
옆에서는 말린 도루묵이 구워지고 있었다.
바닷바람에 꾸덕하게 말라 산화된 도루묵 알들은 노란색, 분홍색, 연푸른색으로 보석처럼 빛났다. 불길이 닿자 알들이 톡톡 소리를 내며 터졌고, 그 식감은 쫀득함을 넘어 입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죽은 대게의 허망한 맛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불꽃이 선사한 야성적인 생명력이었다.
3. 아주까리 기름의 금기(禁忌)와 비법의 장
미각의 기억은 1년 뒤 춘천의 어느 이름 없는 한옥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간판도, 메뉴판도 없는 그곳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낡은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손때 묻은 프라이팬을 들고나온 할머니의 손에는 작은 바카스 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 기름 향이 예사롭지 않아요. 이게 도대체 뭐예요?"
할머니는 비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투박하게 썬 두부를 팬 위에 올렸다.
"이건 약이야. 산초 기름에 아주까리 기름을 섞은 거지. 아주까리는 독이 있어서 함부로 쓰면 안 되지만, 내 손을 거치면 약이 돼."
산초의 톡 쏘는 아릿함과 아주까리 기름의 묵직하고 고소한 향취가 두부의 모공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두부는 겉은 꼬들하면서도 속은 혀가 델 듯 촉촉했다.
할머니가 나를 이끌고 간 뒷간 깊은 곳에는 볏짚으로 만든 닭둥지 형태의 삼각 틀이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세월의 향을 머금은 장독이 숨겨져 있었다.
"여기에 장을 숙성시켜. 자네는 사진쟁이니까 내 마지막 기록으로 남겨줘.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나는 그곳에서 대나무 숲의 향이 장에 스며든다는 전설적인 천하일미의 실체를 보았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다림과 금기를 다루는 할머니의 '혼'이었다.
4. 서른 살, 제천 서부시장의 땡초 돼지 껍질
하지만 내 미각의 원형(原型)은 여전히 제천 서부시장 골목의 어느 낡은 탁자에 머물러 있다.
사진가가 되기 전, 서른 살의 내가 만난 '땡초 돼지 껍질 볶음'. 혀가 마비될 정도의 강렬한 매운맛이었지만, 그 뒤에 숨겨진 감칠맛은 지독한 중독성을 발휘했다.
"자네한테 주는 마지막 선물이야. 내 몸이 이제 안 받쳐줘서 문 닫으려네."
할머니의 마지막 음식을 받아 들었을 때의 그 서글픈 맛. 그 이후로 나는 수많은 명장의 맛집과 백종원의 레시피를 전전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 맛의 발치에도 미치는 포션을 발견하지 못했다.
매체들이 떠드는 맛집은 결국 돈과 기획이 만든 환상일 뿐이었다.
진정한 맛은 숨겨져 있고, 사라져 가며, 오직 경험한 자의 기억 속에서만 완성된다.
나는 오늘도 그 사라져 가는 맛의 복선들을 찾아 렌즈를 들이댄다.
죽은 음식 사이에서 살아있는 단 한 입의 진실을 찾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