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후라이드 치킨을 먹다, 의심부터 삼킨 날

치킨

by 마루

후라이드 치킨을 먹다, 의심부터 삼킨 날

치킨은 원래 생각 없이 먹는 음식이다.

손에 기름 묻히고, 말 줄이고, 계산도 멈춘 채 씹는 음식.

그래서 치킨 앞에서 “이거 괜찮은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는 건,

이미 그 치킨은 실패한 상태다.

안목해변.

바다를 끼고, 커피 냄새와 관광객이 섞이는 곳.

오늘은 바다가 아니라 치킨을 시켰다.

후라이드 치킨. 가장 단순하고, 그래서 가장 숨길 게 없는 메뉴.

첫 입이 이상했다.

맛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맛이 없다는 감각조차 애매했다.

기름 맛은 있는데 닭 맛은 없고,

씹히는 건 바삭한데 남는 건 공허했다.

순살을 갈라보니 안쪽이 어두웠다.

검붉은 색.

기분 나쁜 색은 늘 이유보다 먼저 감정을 건드린다.

“이거… 괜찮나?”

뼈도 눈에 걸렸다.

정상적인 뼈의 색이 아니었다.

밝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회흑색.

설명은 할 수 있어도, 납득은 되지 않는 색.

겉튀김은 지나치게 두꺼웠다.

닭보다 튀김이 앞에 나서 있었다.

마치 “안쪽은 보지 마”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때부터 먹는 행위는 식사가 아니라 판별이 됐다.

맛을 느끼는 게 아니라

의심을 씹고, 불안을 삼키고, 이유를 찾는 과정.

치킨은 원래 이런 음식이 아니다.

의심 없이 뜯고,

설명 없이 넘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음식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치킨은

끝까지 먹지 못했다.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몸이 멈추라고 해서.

치킨이 얼마나 한다고.

이 말은 가격을 낮추는 말이 아니라

기대의 최소선을 말하는 문장이다.

치킨은 비싸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먹다 포기하게 만들 권리는 없다.

오늘의 후라이드 치킨은

맛이 없어서 실패한 게 아니라,

신뢰를 잃어서 끝났다.

그리고 치킨에서

신뢰가 무너지면,

그날 식사는 거기서 끝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간의 뫼비우스 (The Time Moebi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