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림호빵
뜨거운 공백, 혹은 호빵 하나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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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무실동의 겨울밤은 살갗을 바로 긁어내는 쪽에 가까웠다. 바람은 아파트 사이를 통과하며 더 얇고 날카로워졌고, 나는 그 바람을 피해 가장 가까운 편의점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히터 바람이 뒤늦게 따라왔다. 눈이 잠시 어지러웠다.
계산대 옆, 늘 그 자리에 있는 물건을 보았다.
유리와 금속으로 반듯하게 조립된 전자식 호빵 기계. 버튼 하나면 정해진 시간, 정해진 온도의 김이 분사되고, 안쪽의 호빵은 균일하게 데워진다. 위생적이고 정확하다. 안심이 되는 풍경이다. 하지만 정갈하게 줄 선 하얀 덩어리들은 이상하게도 음식보다는 전시품처럼 보였다.
나는 캔커피를 집으려다 손을 거뒀다.
“호빵 하나요. 팥으로.”
집게가 호빵을 집어 올렸다. 얇은 종이 받침 위에 올려지는 순간, 열기가 먼저 손을 찾아왔다. 손바닥이 움찔했다.
화악—
그 뜨거움이 신호였다.
나는 더 이상 무실동에 서 있지 않았다. 눈발이 어설프게 흩날리던 학성동의 골목, 일산초등학교 옆 좁은 길목에 서 있었다. 가게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 앞 풍경은 또렷했다. 낡은 슈퍼, 낮은 처마, 그리고 연탄불 위에 얹힌 호빵 기계.
아래에서는 물이 끓고 있었다. 연탄불의 열기에 물이 성급하게 들끓었고, 그 김이 유리 안을 가득 채워 앞이 보이지 않았다. 유리 안쪽에는 흰 팥 호빵과 노란 야채 호빵이 구분 없이 포개져 있었다. 규칙도, 질서도 없었다. 대신 온기가 있었다.
“아저씨, 하나만 주세요.”
동전을 내밀면 뚜껑이 열렸다. 김이 얼굴로 쏟아졌고, 매캐한 냄새가 함께 섞여 나왔다. 그 냄새는 불편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호빵은 늘 뜨거웠다. 아이 손에는 과분할 만큼.
나는 호빵을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옮겨 다녔다. 앗 뜨거, 하면서도 절대 놓지 않았다. 바닥에 붙은 종이가 열기에 바스락거렸고, 손바닥에는 묵직한 폭신함이 남았다. 입김을 불어가며 한 입 베어 물면, 팥앙금이 터지듯 흘러나왔다. 입천장이 데일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그건 간식이 아니었다.
겨울을 견디게 해주는, 아주 작고 확실한 증거였다. 아직 내가 여기 있다는 증거.
다시 편의점.
나는 전자레인지 옆 테이블에 서서 손안의 호빵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뜨겁고, 여전히 말랑했다. 종이를 떼어내고 한 입을 물었다. 익숙한 단맛이 입안을 채웠다. 분명 맛있다. 하지만 어딘가 비어 있었다.
이 호빵은 공장에서 태어나 냉동차에 실리고, 물류센터를 거쳐, 정확한 시간 동안 정확히 데워졌을 것이다. 그 과정 어디에도 연탄불은 없고, 주인아저씨의 손도 없다. 매캐함도, 위험도, 우연도 없다.
수십 년의 시간과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건너 내 손에 쥐어진 이 뜨거움.
나는 천천히 씹으며 생각했다. 이 호빵이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기는 한 걸까, 아니면 단지 그 자리를 흉내 내고 있을 뿐일까.
손은 따뜻했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는 분명 식지 않는 공백이 있었다.
그 공백의 온도를 나는, 아직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