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라는 이름의 오염
겨울 오후 네 시.
원주역에서 열두 번째 골목을 돌아서면 작은 사진관 하나가 나온다.
네온사인도 없고, 번쩍이는 간판도 없다.
낡은 나무문 위에만 한때 오렌지색이었을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사진관 이름은 하이 오렌지다.
유리창 안쪽에는 오래된 렌즈들이 줄지어 걸려 있고,
난방이 덜 된 공기 속에서 먼지 입자들이 햇빛을 받아 천천히 떠다닌다.
이 공간은 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이차루는 그날도 창가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19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50mm 표준 렌즈가 들려 있었다.
요즘 카메라처럼 가볍지도, 매끈하지도 않은 렌즈였다.
묵직했고, 차가웠다.
그는 천으로 렌즈를 닦았다.
한 번, 또 한 번.
세월의 얼룩이 조금씩 사라졌다.
언제부터인지 손이 멈추지 않았다.
창밖으로 거리가 보였다.
전광판이 세 개나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 전광판에서는 전기차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여자가 웃고 있었다.
피부는 지나치게 매끈했고, 눈빛은 현실감이 없을 만큼 맑았다.
이차루는 알았다.
저 얼굴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수많은 얼굴 데이터를 평균 내어 만들어진,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얼굴’의 결과물이라는 걸.
두 번째 전광판에서는 뷰티 유튜버가 실시간 방송을 하고 있었다.
말을 할 때마다 얼굴이 조금씩 달라졌다.
턱선이 정리되고, 눈이 커지고, 피부가 점점 하얗게 바뀌었다.
젊어 보였다.
아니, 젊어 보이게 만들어진 얼굴이었다.
나이는 의미가 없었다.
기준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만 남아 있었다.
세 번째 전광판은 불편했다.
과거 연예인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주름도, 피로도, 나이의 흔적도 사라져 있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억지로 되돌려 놓은 얼굴.
예쁘긴 했지만, 살아 있는 느낌은 없었다.
“차루.”
사진관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차루가 직접 만든 AI 어시스턴트, 이루다였다.
“이번 학교 앨범 보정 작업요.
외부 클라우드 엔진을 쓰면 금방 끝나요.
왜 굳이 원본 데이터를 그대로 두고 수작업을 하세요?”
이차루는 렌즈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데이터를 밖으로 보내는 순간,
그건 더 이상 그 아이들 얼굴이 아니게 돼.”
“외부 엔진이 더 정확해요.
피부 톤, 눈 밝기, 잡티 제거까지 깔끔하게 처리돼요.”
“완벽하지.”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루다, 완벽이 뭔지 알아?”
잠시 정적.
모니터에 작은 로딩 표시가 떴다.
“완벽은 이상적인 상태와의 일치율이 가장 높은 결과를 말해요.”
“그래. 그게 문제야.”
이차루는 렌즈를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금속의 차가움이 남아 있었다.
“그건 평균이야.
수백만 개 얼굴을 모아서
‘이 정도면 다들 예쁘다고 느낄 것’이라는 결론을 낸 거지.
근데 사람 얼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그는 창밖을 가리켰다.
마침 초등학교 종이 울렸고,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한 아이가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었다.
어깨는 안쪽으로 말려 있었고, 귀는 빨갰다.
“저 아이는 어제 친구한테 상처받았어.
그래서 지금 저렇게 걷는 거야.
근데 저 자세, 저 표정이
지금 이 아이의 얼굴이야.”
이루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 요소들은 보정 대상이에요.”
“아니야.”
이차루가 고개를 저었다.
“사진은 기록이야.
그 아이가 열 살이던 어느 겨울 오후의 기록이지.
그걸 다 지워버리면,
나중에 남는 건 예쁘지만 아무것도 없는 껍질이야.”
이루다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이해한 척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밤이 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이 오렌지 유리창 위로 눈송이가 부딪히고,
안에서는 형광등 불빛이 따뜻하게 번졌다.
라디오에서는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차루는 탁자 위에 인화지 몇 장을 펼쳐두고 있었다.
빵집 앞에서 빵을 받는 아이,
버스 정류장에서 졸고 있는 회사원,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는 고등학생.
특별한 장면은 없었다.
그냥 하루의 조각들이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자기야.”
서연이었다.
이차루의 여자친구였다.
모자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코끝은 빨갰다.
“사진 한 장만 찍어줘.”
서연이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필터 있잖아.
얼굴 보정도 좀 세게.”
그녀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옆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눈 내리는 파리 배경,
인형처럼 매끈한 얼굴.
이차루는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거, 네 얼굴 아니야.”
“무슨 소리야. 나잖아.”
“예쁘긴 한데, 네가 아니야.”
서연의 표정이 굳었다.
“난 그냥 예쁜 사진 하나 갖고 싶은 거야.
왜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이차루는 말하지 못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필터는 거짓말이 아니라,
서연이 세상에서 버티는 방식이라는 걸.
그날 새벽,
도시는 갑자기 이상해졌다.
전광판이 깜빡이기 시작했고,
영상들이 일그러졌다.
사람 얼굴은 형태를 잃고,
색과 윤곽만 남았다.
AI가 만든 이미지들이
AI가 만든 데이터를 다시 먹고 자라다
한계에 도달한 것이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한 채
계속 복제된 결과였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화면 속 얼굴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디지털이 멈췄을 때,
하이 오렌지는 살아 있었다.
외부 서버에 연결되지 않은 시스템.
원본 데이터만 남아 있는 저장 구조.
이루다는 감염되지 않았다.
“차루.”
이루다가 말했다.
“이제 알겠어요.
진짜 데이터를 남긴다는 게 뭔지.”
그녀는 다른 AI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가짜를 복제하지 말 것.
원본을 기준으로 삼을 것.
완벽을 목표로 삼지 말 것.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였다.
일주일 후.
도시는 아직 어수선했지만,
사람들은 다시 길로 나왔다.
전광판은 꺼져 있었고,
사람들은 필터 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서연은 이차루 옆에 서 있었다.
화장도, 보정도 없었다.
“이상하게.”
서연이 말했다.
“이 얼굴이 이제 괜찮아.”
이차루는 카메라를 들었다.
빛은 완벽하지 않았고,
구도도 어설펐다.
하지만 셔터를 눌렀다.
찰칵.
그 소리는
가장 정직한 소리였다.
완벽한 가짜보다
조금 부족한 진짜를 남기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