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맥주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자, 계산대 쪽 테이블 위에 작은 봉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계산을 하려고 다가가는데, 주인이 나를 한번 힐끔 보더니 아무 말 없이 그 봉투를 턱, 앞으로 밀어놓는다.
눈빛이 묘했다.
“저 아저씨가 이걸 쓸 수 있나?”
딱 그런 표정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봉투를 집어 들었다. 공짜라는 기척이 느껴지면 사람은 일단 손이 먼저 간다. 망설이다가 하나를 더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별 의미는 없었다. 그냥, 공짜니까.
밖으로 나와 봉투를 열어보니 고무 재질의 작은 물건이 들어 있었다. 뒤쪽에는 동그란 고리가 달려 있었다.
핸드폰 고리도 아니고, 열쇠고리도 아닌 애매한 형태.
“이게 뭐지?”
집에 와서 검색을 했다.
신발 장식. 크록스 지비츠.
화면 속에는 알록달록한 신발들이 쏟아졌다. 꽃이 달리고, 인형이 달리고, 캐릭터들이 신발 위에 잔뜩 매달려 있었다. 예전에 길에서 본 적이 있다.
‘저건 또 뭐 하는 짓이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장면들.
그때는 몰랐다. 신발에 왜 꽃을 달고, 왜 인형을 꽂고, 왜 그렇게 요란하게 꾸미고 다니는지.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신발은 신발이면 됐지,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그런데 손바닥 위에 놓인 이 작은 고무 조각을 보니, 문득 생각이 달라졌다.
아, 이게 거기에 쓰는 거였구나.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신발도, 가방도, 몸의 일부처럼 쓰는 것 같다. 기능보다 태도에 가깝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말을 말 대신 물건으로 붙여 다닌다.
MZ니 뭐니 하는 말보다, 그냥 개성의 세대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나는 그날 그걸 쓰지도 않으면서 웃으며 주머니에 넣었다.
쓸 줄도 모르고, 쓸 마음도 없으면서.
그 모습이 조금 우습고, 조금 부끄러웠다.
어쩌면 그 봉투를 건네던 주인의 눈빛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이걸 쓸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물건이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