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느린 생명에 대한 기록

거북이

by 마루

— 가장 느린 생명에 대한 기록

카메라의 다이얼을 돌린다.

1/8000초.

1/1000초.

30초.

벌브(Bulb).

어떤 셔터 스피드도 이 피사체에는 맞지 않는다.

내 앞에 놓인 육지거북은 생물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바닥 아래에 묻혀 있던 기억 장치에 가깝다. 누군가 실수로 콘크리트 아래에 매립해버린 외장 하드디스크처럼.

구도심 상가의 인테리어 보수공사 현장.

습기도, 빛도 닿지 않던 틈에서 거북이가 나왔다.

13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사람들은 기적이라 불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안다.

같은 장면이라도 셔터 스피드가 달라지면, 시간의 밀도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 거북이는 시간을 건너온 것이 아니라,

시간을 저장하고 있었을 뿐이다.

접힌 생명들

나는 뷰파인더를 통해 녀석을 보며 오래된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극한의 환경에서 스스로를 탈수시켜 종이처럼 접는 존재들.

그들은 죽지 않는다.

그저 ‘다시 실행 가능한 상태’로 전환될 뿐이다.

아프리카의 진흙 속에서 비를 기다리는 폐어,

항아리 속에서 수백 년을 잠들다 싹을 틔운 씨앗들.

그리고 과학과 전설의 경계 어딘가에 남아 있는 이야기들.

광산 깊숙한 석관, 보라색 액체,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존재.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왜 인간은 반복해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가다.

어쩌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명이란 ‘항상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정보라는 사실을.

사진은 시간을 보존하지 않는다

“차루 씨, 안 찍어요? 특종인데.”

현장 소장의 말에 정신이 돌아온다.

하지만 나는 셔터 위에 올린 손가락을 거둔다.

사진가로서의 감각이 무뎌진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선명하게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지금껏 나는 찰나를 붙잡는 사람이었다.

빛이 얼굴을 스치는 0.001초,

표정이 무너지는 순간,

파도가 부서지는 바로 그 장면.

그게 사진의 전부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13년을 접힌 채 버틴 이 거북이는 말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순간을 억지로 붙잡지 말라고.

대신, 다시 깨어날 수 있는 조건을 남기라고.

사진은 박제가 아니다.

사진은 ‘보존’이 아니라 저장이다.

누군가의 시선이라는 습도를 만났을 때,

빛과 공기와 감정이 다시 로딩될 수 있도록 남겨두는 데이터.

가장 긴 노출

나는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거북이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눈꺼풀 아래에는

13년치 어둠과 고요가 압축되어 있을 것이다.

인간의 13년이, 이 생명에게는

짧은 오수(午睡)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깨어 있는 상태로 끊임없이 에너지를 태우고

기록하고 소비하며 소진되는 우리 인간이야말로

우주적 기준에서는

아주 예외적인 ‘과잉 생명’인지도 모른다.

현장을 떠나며

나는 빈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셔터를 누르지 않은 장면 하나가

망막 위에 또렷이 저장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밤,

내 카메라는 가장 긴 셔터 스피드를 기록했다.

기록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지워지지 않는,

13년짜리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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