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버 데이》를 바라보는 한국 사진사의 시선

《레이버 데이》

by 마루

— 《레이버 데이》를 바라보는 한국 사진사의 시선

이 영화는 늘 오해 속에 놓여 있다.

도피극처럼 보이지만 긴박하지 않고,

로맨스처럼 보이지만 열정적이지 않다.

가족 영화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조용하고,

범죄 영화라고 부르기엔 너무 많은 햇빛이 있다.

《레이버 데이》는 미국 영화다.

그리고 그 사실은 프레임과 색감,

사랑을 배치하는 방식에서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프랭크는 탈옥수다.

아델은 상실을 견디지 못한 채 멈춰 있는 여성이고,

헨리는 아직 세상의 언어를 다 배우지 못한 아이이다.

이 세 사람이 한 집에 머무는 시간은 단 5일.

영화는 이 짧은 시간을

마치 한 계절처럼 늘려 보여준다.

미국 영화답게,

이 사랑은 공간 속에서 표현된다.

햇빛이 들어오는 주방,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

정돈된 마당,

목초 냄새가 남아 있을 것 같은 집.

프랭크는 이 공간 안에서

‘위험한 남자’가 아니라

‘쓸모 있는 남자’로 자리 잡는다.

요리를 하고,

집을 고치고,

아이에게 말을 건다.

이 영화에서 가족애는

대사보다 행동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그 행동은 늘 밝은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미국 영화가 사랑을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한국 관객에게

어딘가 비어 보이기 시작한다.

한국인의 사랑은

이렇게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의 가족 감정은

마당이 아니라 입구에 있다.

식탁이 아니라

신발 옆에 있다.

말보다

정리되지 않은 흔적에 남아 있다.

비뚤어져 벗어놓은 노인의 운동화,

불 꺼진 거실,

아무 말 없이 밀어 넣은 신발 한 켤레.

우리는 거기서 감정을 읽는다.

말하지 않은 사랑,

표현하지 않은 연대,

묻지 않은 안부.

하지만 《레이버 데이》의 카메라는

그 지점을 찍지 않는다.

아니, 찍을 수 없다.

이 영화의 프레임은

언제나 열려 있다.

감정은 햇빛 속에 놓이고,

사랑은 공간 전체로 확장된다.

프레임은 인물을 감싸며

“이건 따뜻한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휴머니즘은

분명하지만,

어딘가 단단하지 않다.

프랭크는 위험하지 않다.

그는 끝내 폭력을 선택하지 않고,

가족을 해치지 않으며,

모든 선택을 ‘좋은 방향’으로 정리해 준다.

미국 영화 특유의 윤리다.

하지만 한국인의 시선으로 보면

이 선함은 너무 빠르다.

우리는 사랑을 그렇게 믿지 않는다.

특히 말하지 않는 사랑을.

아델이 프랭크를 받아들이는 과정,

헨리가 그를 가족으로 인식하는 순간들은

영화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한국인의 정서에서는

조금 성급하다.

우리라면

아마 더 오래 침묵했을 것이다.

더 많은 공허를 견뎠을 것이다.

사랑을 말하지 않기 위해

입술을 더 세게 깨물었을 것이다.

미국 영화는

그 침묵을 오래 두지 않는다.

침묵은 언제나

다음 행동을 위한 준비 상태다.

하지만 한국의 감정에서 침묵은

종착지다.

그래서 《레이버 데이》는

아름답지만,

끝내 우리 것이 되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사랑을 설명하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은 보여주려 한다.

우리는 사랑을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사진가로서 이 영화를 보며

나는 계속 프레임의 중앙을 의식하게 된다.

이 영화는 늘 중앙을 채운다.

사람을 두고,

공간을 열고,

빛을 놓친 적이 없다.

하지만 한국의 감정은

늘 프레임의 가장자리에 있다.

중앙을 비워두어야만

남는 것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번역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레이버 데이》는

미국이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정직한 기록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사랑을 침묵으로 지키는 방식이

왜 그들에겐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큰 여백은

사건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감정이다.

그리고 그 여백 앞에서

한국 사진사는

조금 물러서서 생각하게 된다.

어떤 사랑은

햇빛 아래 있어야 하고,

어떤 사랑은

입구에 남아야 한다는 걸.

이 영화는

그 차이를

끝내 건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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