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
작업실 창가에는 오후의 비스듬한 햇살이 길게 누워 있었다.
겨울과 봄 사이 어디쯤에 머무는 빛이었다.
차갑지도, 완전히 따뜻하지도 않은 주황색 온도. 책상 위에는 식어버린 커피 잔과 어제 찍은 플랫폼의 인화 사진들이 겹겹이 흩어져 있었다.
종이 위에 남은 미세한 잉크의 결을 손끝으로 훑다 보면, 셔터를 누르던 순간의 감각이 다시 살아났다.
금속 버튼이 살짝 들어가며 전해지던 서늘함,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던 짧은 정적.
하지만 모니터 속 커서는 그 모든 기억과 무관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지나치지 말라고 재촉하는 신호처럼.
전혀 다른 단어를 찾으려다 우연히 마주친 단어, ‘CAR-T’.
낯선 철자의 조합은 초점이 어긋난 렌즈처럼 선명하지 않았다.
의미를 완전히 알지 못한 채 화면 위에 떠 있는 약어는, 단지 ‘사람의 몸’ 어딘가와 관련된 것이라는 감각만을 남겼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클릭했다. 습관처럼, 이유 없이.
순간 모니터의 하얀 빛이 작업실의 주황색을 밀어냈다.
잉크 냄새도, 종이의 마찰도 없는 디지털 파일 속에서 문장들은 정렬되어 있었다.
그래프와 도식, 수치와 각주. 논문은 늘 그렇듯 감정을 허락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절박한 설계도를 보았다.
누군가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최대한 침착하게 기록한 지도.
논문 속 문장들은 무미건조했다.
소독차가 지나간 자리처럼 서늘하고 깨끗했다.
‘의미 있는 반응’, ‘통계적으로 유의미함’ 같은 표현들은 인간의 체온을 철저히 배제한 언어였다.
그런데도 그 문장들 사이로, 며칠 전 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지인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날 병원 복도에는 특유의 약품 냄새가 낮게 깔려 있었다.
발걸음 소리는 유난히 크게 울렸고, 형광등은 모두 같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인은 벽에 기대 앉아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화면 위로 날카로운 불빛이 반사되며 그의 얼굴을 두 번 비추고 있었다.
항암 일정 옆에 그려진 작은 동그라미들. 날짜마다 정직하게 찍힌 표시들은 마치 하루하루를 건너기 위한 작은 디딤돌처럼 보였다.
볼펜 심이 종이를 누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손길은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힘을 주면 무언가가 부서질 것처럼. 그는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습기를 머금은 종이처럼 눅눅했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금씩 접혀 들어갔다.
나는 그 말을 붙잡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이 그 정도라는 걸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업실로 돌아와 나는 보정 프로그램을 껐다.
노출을 맞추고, 색을 정리하고, 선명도를 조금씩 끌어올리는 익숙한 과정이 그날만큼은 기만처럼 느껴졌다. 너무 또렷한 이미지는 현실을 덮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 속에서 보았던 **‘면역세포가 깨어난다’**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깨어난다는 말은, 어쩌면 완벽하게 보정된 결과가 아니라, 실패와 흔들림을 포함한 상태 그대로의 생명력을 뜻하는 건 아닐까.
사진도 그렇다.
완벽한 구도보다, 약간 흔들렸어도 그날의 공기와 온도를 품은 사진이 오래 남는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종종 너무 많은 보정을 시도한다.
생명을 다루는 연구도 어쩌면 비슷한 지점에 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다시 검색창을 열었다.
이번에는 ‘기적’이라는 단어를 쳤다. 화면 가득 쏟아지는 자극적인 제목들, 단정적인 문장들, 과도한 희망을 약속하는 수식어들. 그러나 그 화려함 속에는 체온이 없었다.
손을 대면 바로 식어버릴 것 같은 문장들뿐이었다.
오히려 논문의 마지막 각주가 더 오래 눈에 남았다.
‘추가 연구가 필요함’, ‘장기적인 효과는 아직 불분명함’. 기적이라는 말을 끝내 쓰지 않고, 한계와 부작용을 차분히 기록한 문장들. 그것은 마치 찰나의 빛을 얻기 위해 수백 번 셔터를 누르는 사진사의 인내와 닮아 있었다.
실패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다음 장면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태도.
해가 조금 더 기울자 작업실의 주황색이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