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은 사진보다 오래 남는다
임영웅의 휘파람은 사진보다 오래 남는다
— 소리로 현상한 세 개의 장면
휘파람 소리는 때로 눈에 보이는 풍경보다 더 선명하다.
사진은 빛을 붙잡지만, 휘파람은 시간을 붙잡는다.
나는 사진가가 되었지만, 어떤 장면들은 아직도 소리로 먼저 떠오른다.
1. 버드나무 아래, 가장 먼저 현상된 장면
내 기억 속 첫 번째 휘파람은 영화도, TV도 아니었다.
동네 개울가였다.
버드나무가 낮게 드리워진 그늘 아래, 낡은 나무 탁자 하나.
하얀 브라우스를 입은 동네 누나가 그 아래 앉아 있었다.
입술을 살짝 오므리고,
이와 이 사이로 공기를 밀어내듯 휘파람을 불었다.
소리는 개울물 위를 미끄러지듯 흘렀고,
버드나무 잎은 그 리듬에 맞춰 천천히 흔들렸다.
나는 한쪽에 걸터앉아 턱을 괴고 그 장면을 바라봤다.
휘파람을 불 때마다 누나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오물거렸고,
그 움직임이 이상하게도 오래 눈에 남았다.
그때 나는 휘파람을 따라 불지 못했다.
몇 번을 흉내 냈지만 입에서 나오는 건
음이 아니라 바람뿐이었다.
아마 그때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휘파람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
잘 부는 사람보다,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부는 소리라는 걸.
2. 극장 안에서 들린 휘파람, 꺾이지 않겠다는 선언
중고등학생 시절,
제천 아시아극장에서 단체 관람으로 본 콰이강의 다리.
어두운 극장 안에서 나는 전혀 다른 휘파람을 만났다.
포로들이 다리를 놓기 위해 줄을 맞춰 걸어가며 부르던 휘파람.
경쾌한 행진곡인데,
그 장면에서는 웃음 대신 서늘함이 먼저 올라왔다.
그 곡은 1914년,
영국 작곡가 케네스 J. 알퍼드가 만든
〈Colonel Bogey March〉라는 군악 행진곡이다.
영화에서는 작곡가 말콤 아놀드가 편곡해
악기 대신 인간의 입으로, 휘파람으로 불리게 했다.
죽음과 강제 노역이 반복되는 공간에서
그들은 노래하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다.
대신 휘파람을 불었다.
그건 즐거움의 표현이 아니었다.
비굴해지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자세,
존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몸의 각도였다.
그 휘파람을 들으며
나는 버드나무 아래의 누나를 떠올렸다.
상황도, 감정도 전혀 다른데
소리의 결은 이상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억압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것.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때 남는 소리.
비슷한 감정은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테마곡에서도 느꼈다.
그 음악은 노래가 아니라 시대의 호흡 같았다.
휘파람이 자유의 선언이라면,
그 선율은 견뎌낸 시간의 심박이었다.
3. TV 속의 휘파람, 위로가 되는 소리
요즘 나는 거실 TV에서
또 하나의 휘파람을 듣는다.
가수 임영웅의 노래 속 휘파람이다.
그의 휘파람은
콰이강의 휘파람처럼 당당하지도 않고,
개울가의 휘파람처럼 장난스럽지도 않다.
조금 낮고,
조금 느리고,
조금 미안한 소리다.
그래서인지
그 소리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에게 닿는다.
특히 오랜 시간을 버텨온 사람들에게.
그를 지지하는 팬들,
이른바 ‘어머니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이해가 간다.
그 휘파람은
“당신의 삶도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굳이 설명하지 않고 말해주는 소리다.
성대를 쓰지 않는 소리,
말이 되기 이전의 감정.
휘파람은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위로일지도 모른다.
4. 사진사가 기록하지 못한 것들
사진은 빛을 고정한다.
하지만 소리는 고정되지 않는다.
휘파람은 늘 흘러가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버드나무 아래의 누나,
콰이강의 포로들,
그리고 오늘의 TV 화면 속 휘파람까지.
얼굴은 흐려지고
장면은 사라졌지만
그 소리들만은
여전히 선명하다.
나는 여전히 휘파람을 잘 불지 못한다.
입에서 나오는 건 여전히 바람에 가깝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어떤 순간들은
소리로 이미 현상되었다는 걸.
휘파람은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얇은 선율이자,
사진보다 오래 남는
기억의 사진첩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