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향이 깨우는 아침
새벽 공기가 목구멍 안쪽을 서늘하게 긁었다.
안개는 낮게 깔려 감자밭을 덮고 있었고, 흰 감자꽃은 이슬에 젖어 가벼운 숨을 쉬듯 떨고 있었다.
나는 바지 자락을 끌며 천천히 그 사이를 걸었다.
꽃술의 노란 가루가 바지에 스쳤고, 순간 달콤하면서도 눅눅한 흙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건 단순한 흙향이 아니었다. 갓 씻은 사람의 손목에서 나는 체온 섞인 비누 냄새 같았다.
손끝으로 감자꽃 줄기를 살짝 잡아 당기자,
부러질 듯 부드럽게 휘어지는 탄력이 손바닥을 간질였다.
소나무 언덕 위 좁은 길을 오르자,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 사이를 얇은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나는 손바닥을 소나무 껍질에 댔다.
껍질의 굵은 결이 마른 손바닥의 주름 사이를 긁으며 스며들었다.
송진이 묻어 손가락이 끈적였고, 그 끈적임이 바람을 타고 진한 송진 향으로 바뀌었다.
눈을 감으니, 나무 속에서 천천히 공기가 오르내리는 듯한 숨소리가 들렸다.
그건 오래 서 있던 나무가 사람처럼 숨을 쉬는 순간 같았다.
비가 촘촘히 내리는 강가,
소녀는 젖은 머리카락을 고르지도 않고 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비가 그녀의 어깨를 타고 떨어질 때마다 작은 물방울들이 살처럼 반짝이며 튀었다.
소녀가 손을 강물 속으로 넣었다.
차가운 물결이 손목을 타고 올라가고, 작은 돌멩이가 손바닥에 굴러다니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그 순간의 온도를 잊을 수 없었다.
구운 감자의 달콤한 향이 빗물 냄새와 섞여 있었다.
소녀는 감자를 들어 나에게 건넸다.
손에 닿는 순간, 김이 살갗을 태우는 듯 뜨거웠지만, 그 열기에는 이상하게도 사람의 숨결 같은 따뜻함이 있었다.
마루 위에 앉은 밤, 공기가 젖은 나무 향을 토해내고 있었다.
별들이 은하수처럼 흘렀고,
내 옆에 놓인 찐감자에서 하얀 김이 나와 공기 속으로 서서히 풀렸다.
그 김이 밤하늘의 별빛과 섞여 한 줄기 은하수처럼 길게 뻗어 올라가는 것 같았다.
감자를 한입 베어 물었다.
부드럽게 으깨지는 속살이 혀끝에서 달콤하게 녹았고, 껍질에 묻은 약간의 쓴맛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그 맛은 흙의 맛이었고, 그 흙은 사람의 체온과 닮아 있었다.
낡은 방 안, 먼지 덮인 딸랑이가 창가에서 멈춘 채 매달려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이대며 숨을 멈췄다.
바람이 없는데도, 딸랑이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순간, 금속이 부딪히는 낮고 둔탁한 울림이 방 안에 맴돌았다.
벽에 드리운 그림자가 마치 사람의 눈동자가 깜박이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가슴 속이 한순간 얼어붙었지만, 그 공포 속에도 묘하게 익숙한 체온이 느껴졌다.
나는 수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사람들은 그 속의 온기를 보지 못했다.
소녀의 실눈은 저주라 불렸고,
뜨거운 감자를 건네던 작은 손길은 이상한 의식으로 왜곡됐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건 저주의 기록이 아니라, 사람의 체온이 남긴 기억이었다는 걸.
마루 위에서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찐감자 위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은하수와 섞여 천천히 사라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혼잣말을 했다.
“네가 남긴 건 결국 이 향과 온도였어.
넌 여전히, 은하수 아래 감자공주였어.”
이 이야기는 눈에 보이는 진실이 아니라, 향과 온도로 기억되는 작은 순간들에 관한 기록이다.
가끔은 사진보다 오래 남는 게 있다.
손끝의 끈적임, 비에 젖은 냄새, 감자가 식어가는 속도…
그 모든 게 삶의 증거였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