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이름 아래로 자동 완성처럼 떠오르는 뉴스

긁히는 소리와 살결의 온도

by 마루

익숙한 이름 아래로 자동 완성처럼 떠오르는 뉴스 목록들 사이에서,

고유정이라는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사진을 찾으려던 건 아니었다.

사건을 정리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요즘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기사의 문장은 건조했고,

사진은 언제나처럼 비어 있었다.

시체 없음.

동기 불명.

행위만 확정.

이상하게도 그 순간,

영화의 장면 하나가 겹쳐 올라왔다.

1. 긁히는 소리와 살결의 온도

취조실의 공기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감독은 이 장면을 위해 가장 날카로운 음악을 주문했을 것이다.

관객의 심장을 조여 오는 선율,

불안이 목덜미를 타고 오르는 정확한 박자.

하지만 스크린 밖에서 살아남은 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차가운 금속 의자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는 소리.

형사들의 숨이 짧아지는 리듬.

그리고 여자가 다리를 꼬았다가, 푸는 그 찰나의 행위.

사람들은 그 장면을 ‘원초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영화의 본질은 거기에 없었다.

그건 자극이었고,

진짜 긴장은 프레임 밖에서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음악은 인물의 심리를 밀어내려 애썼지만,

관객은 이미 살결의 온도와 시선의 각도로

그 방의 모든 긴장을 다시 정의해버렸다.

감독의 의도는 정교했지만,

감각은 그보다 빨랐다.

2. 안개 속에서 지연되는 문장

카메라는 산과 바다를 유려하게 훑는다.

미장센은 완벽했고,

음악은 슬픔을 안개처럼 장면 위에 얹어놓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관객은 길을 잃는다.

음악 때문이 아니다.

서툴게 도착하는 문장.

문장 끝이 아주 미세하게 늦는 말투.

단어와 단어 사이에 남는 공기.

그 어긋난 리듬,

그 언어의 습도.

관객은 감독이 깔아놓은 서사를 따라가는 대신

그 말투에 머문다.

의미가 완전히 전달되지 않는 그 틈에서

오해는 사랑이 되고,

음악은 기억의 뒤편으로 밀려난다.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어긋난 감각이 이 영화의 얼굴이 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프레임은 정확했지만,

각인된 것은 의도가 아니라 결이었다.

3. 사라진 ‘왜’, 냄새로 남은 현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이곳에는 음악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이유’를 찾았다.

왜 그랬는지,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하지만 동기라는 서사는 끝내 완성되지 않았다.

남은 것은 행위의 흔적뿐이다.

CCTV 화면 속에서 끊기는 프레임의 질감.

소각장이라는 단어가 가진 금속성.

펜션 바닥에 스며든, 지워지지 않는 냄새.

이 이야기에는 ‘왜’가 없다.

마치 음악이 제거된 채

박자만 남은 곡처럼.

우리는 사건을 이해하는 대신

그 파편화된 흔적들이 뿜어내는 공기를

온몸으로 감각하며 공포를 완성한다.

에필로그: 감각의 승리

세상은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프레임들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음악을 깔고,

누군가는 구도를 잡고,

누군가는 명분을 심는다.

하지만 결국 살아남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감각의 잔상이다.

우리는 음악을 잊었기에

그 장면의 온도를 기억하고,

서사를 놓쳤기에

그 말투의 습도를 기억하며,

이유를 모르기에

그 범죄의 냄새를 잊지 못한다.

의미는 주입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감각이 멈춰 선 그 자리에서

매번 새롭게 태어난다.

하이오렌지필름의 기록이 늘 그랬듯,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빛을 수집하는 일이 아니라

프레임을 스쳐 지나간 감각의 잔상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다.

그래서 어떤 의도는 죽고,

어떤 잔상은

끝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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