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를 연다.
허리 높이에서 뷰파인더를 연다.
네모난 창 안에
세상이 조용히 담긴다.
뒤집힌 풍경.
조금 느린 빛.
조금 늦게 도착하는 마음.
Hasselblad 503CX.
이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사진을 찍는다는 말보다,
사진 앞에 서 있다는 말이 더 맞다.
처음 보이는 것은
렌즈도 아니고,
기계도 아니다.
손이다.
초점을 돌리는 손,
조리개를 맞추는 손,
셔터 위에서 잠시 멈추는 손.
이 손의 멈춤이
사진을 만든다.
뷰파인더 속에
산이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산이 아니라 산의 기척이다.
선명하지 않아도 좋다.
또렷하지 않아도 좋다.
이 풍경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화면이 바뀐다.
밝은 실내.
흰 꽃들.
정갈하게 놓인 과일.
은은하게 흔들리는 촛불.
가운데,
작은 아이 하나.
한복을 입고 앉아 있다.
아직 사진이 되기 전의 장면.
거품이 천천히 떠오른다.
아이보다 먼저 떠오른다.
어른들의 마음보다 먼저 떠오른다.
동그랗고 투명한 거품들이
공기 중에 머문다.
아이는 거품을 본다.
놀란 눈.
조금 열린 입.
아주 짧은 숨.
그 순간이
사진이다.
나는 셔터를 누른다.
찰칵.
크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은 소리.
하지만 안쪽에서는
분명히 무언가가 저장된다.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이.
디지털 카메라는
결과를 바로 보여준다.
이 카메라는
기다리게 만든다.
기다리는 동안
장면이 머릿속에서 한 번 더 현상된다.
아이의 표정.
거품의 높이.
촛불의 흔들림.
사진은 아직 없는데,
기억은 이미 있다.
나는 요즘
사진이란 게 무엇인지
자주 생각한다.
잘 나온 이미지인가.
예쁜 색감인가.
깔끔한 구도인가.
503CX를 쓰다 보면
답이 조금 달라진다.
사진은
잘 만든 결과가 아니라,
잘 바라본 순간의 흔적이라는 생각.
산을 찍든,
아이를 찍든,
결국 찍는 것은 같다.
사라질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내는 나 자신.
허리 높이의 작은 창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알려주는 창 같다.
그래서 이 카메라는
나에게 묻는다.
지금,
정말 보고 있느냐고.
그리고 나는
오늘도
조금 늦게 셔터를 누른다.
사진보다 먼저,
마음을 한 번 더 눌러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