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철갑을 두른 달팽이와 어머니의 찰밥
세상은 이제 '에이전트'니 '자동화'니 하며, AI가 인간의 손가락 하나까지 대신해 주는 시대가 왔다고 떠든다.
내 컴퓨터를 원격 제어 기사처럼 제멋대로 주무르는 AI 에이전트를 보며 사람들은 편리함을 말하지만, 나는 문득 인도양 깊은 바닷속의 비늘발달팽이를 생각한다.
이 작은 생명체는 섭씨 300도가 넘는 뜨거운 용암 기둥 곁에서 산다.
그 지옥 같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놈이 택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그 뜨거운 물속의 '철' 성분을 자기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외피를 무쇠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되, 그 안의 부드러운 생명력만큼은 결코 잃지 않는다.
내가 구상하는 '반자동화 워크플로우'가 바로 이 달팽이의 철갑과 같다.
AI라는 차가운 기술을 내 작업 공간(클라우드 샌드박스)에 들여와 '철갑'으로 삼는다.
수평을 맞추고, 사진을 분류하고, 초안을 잡는 지루한 노동은 그 철갑에게 맡긴다.
하지만 그 철갑 안에서 숨 쉬는 '창작의 본질'은 결국 나라는 생명체다.
여기에 '찰밥'의 기억을 더해본다.
찰밥은 그냥 쌀밥과는 다르다.
찹쌀과 팥, 콩이 어우러져 쪄지는 과정은 지독하게 느리고 정성이 들어간다.
찰밥의 매력은 그 찰기, 즉 '끈끈함'에 있다. 밥알 하나하나가 따로 놀지 않고 서로를 꽉 붙들고 있는 그 응집력.
내가 말한 '창작자의 워크플로우'는 바로 찰밥의 찰기와 닮아야 한다.
AI(철갑) 아무리 빠르고 단단하게 겉을 싸고 있어도, 그 알맹이인 데이터와 아이디어(밥알)들이 창작자의 의도라는 찰기로 뭉쳐 있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모래알 같은 기술의 나열일 뿐이다.
구글이나 오픈AI가 제공하는 시스템은 그저 '솥'일 뿐이다. 그 안에서 어떤 찰기를 만들어낼지는 오로지 창작자의 몫이다.
철갑을 두른 비늘발달팽이가 뜨거운 바다를 견디듯, 나 또한 AI라는 기술의 용암을 내 창작의 외피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그 단단한 껍데기 안에는 어머니가 갓 지어주신 찰밥처럼, 따뜻하고 끈끈한 인간의 온기가 살아있는 '하이 오렌지'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
작가의말
도구에서 ‘대행자’로 변한 순간
예전의 AI는
“이 사진 보정해줘”라고 하면
보정된 결과만 돌려주었습니다.
지금의 AI 에이전트는 다릅니다.
“지난달 웨딩 사진 찾아서,
톤 맞춰 보정하고,
클라이언트에게 메일로 보내고,
완료 보고까지 해.”
하나의 명령이
하나의 작업이 아니라,
하나의 워크플로우가 되었습니다.
편리합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은 조용히 몇 가지를 가져갑니다.
과정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왜 이 결과를 받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설정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가 됩니다.
AI가 만든 결과가 다시 AI의 데이터가 되며,
내 색은 조금씩 옅어집니다.
이때부터 AI는
도구가 아니라 대행자가 됩니다.
그리고 창작자는
결정권을 조금씩 내려놓게 됩니다.
경계를 먼저 세운다
주도권은 실력보다 먼저
경계선에서 나옵니다.
모든 걸 맡기는 순간,
통제는 끝납니다.
그래서 구조를 나눕니다.
원본 사진
미공개 작업
개인 메모, 생각, 철학
→ 인터넷과 분리된 공간
AI가 접근 가능한 폴더
작업용 파일만 업로드
AI 결과물을 바로 쓰지 않음
반드시 사람이 먼저 확인
AI는
내 컴퓨터 안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나는
AI가 일할 방을 하나 만들어 줄 뿐입니다.
이 차이가 큽니다.
분석 – 가공 – 개입
중요한 것은
누가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레퍼런스 정리
색감 패턴 추출
스타일 분류
창작자의 역할:
무엇을 학습시킬지 결정
초안 생성
레이어 분리
반복 보정
창작자의 역할:
어디까지가 ‘쓸만한 초안’인지 판단
감정선 조절
일부러 거칠게 만들기
선택과 제거
최종 서명
창작자의 역할:
왜 이 결과물이어야 하는가를 말하는 사람
AI는 만들고,
인간은 결정합니다.
심해에는
몸에 철갑을 두른 달팽이가 있습니다.
주변의 황화철을 흡수해
자신의 갑옷을 만듭니다.
환경은 지옥인데,
그 지옥의 성분으로
몸을 보호합니다.
이게 힌트입니다.
쏟아지는 AI 서비스 → 심해의 열기
AI 기술 → 황화철
반자동화 워크플로우 → 철갑
취향과 직관 → 철갑 안의 생명체
기술을 피하지 않습니다.
기술을 재료로 씁니다.
AI는 말합니다.
이 사진이 가장 선명합니다.
창작자는 말합니다.
이 사진에는 슬픔이 있습니다.
AI는 계산합니다.
창작자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 선택권이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에이전트를 부리는 감독의 태도
AI 에이전트를
나를 대신할 존재로 생각하지 마세요.
로봇 팔로 생각하세요.
나는 본다
나는 판단한다
AI는 실행한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AI는 위협이 아니라
당신의 세계관을 지탱하는
철갑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