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고,

가오다시

by 마루

무실동, 대한민국 삼겹살집.

벽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고,

테이블 위에는 연기가 얇게 깔려 있다.

지인과 한 잔 하고 있었다.

고기가 익는 소리보다,

사람들 목소리가 더 먼저 튀는 시간대였다.

옆 테이블이 들썩였다.

술이 좀 오른 목소리들.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야, 가오잡지 마.

가오다시 하네.

말은 거칠었는데,

이상하게도 공기는 살벌하지 않았다.

싸움이라기보다는,

술자리 특유의 과장된 몸짓에 가까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미간이 아주 잠깐 찌푸려졌고,

그 다음에 웃음이 올라왔다.

입 안에 있던 소주가

위험할 정도로 흔들렸다.

왜 웃음이 나왔을까.

생각해보니,

그 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내 앞 벽에 걸린 태극기.

아마 그들도 봤을 것이다.

가오를 잡다가,

문득 태극기를 본 것이다.

그 순간의 멈칫.

그 어정쩡한 침묵.

가오를 잡다가

산통이 난 장면.

나는 뿜을 뻔했고,

그들은 말을 삼켰고,

지인은 박장대소했다.

누군가는 체면을 지키려다 실패했고,

누군가는 국기를 보며 말끝을 접었고,

누군가는 그 모든 어긋남이 우스워서 웃었다.

삼겹살집 안에는

거창한 사상도,

정확한 정의도 없었다.

있던 건

연기,

소주,

기름 튀는 소리,

그리고

가오라는 단어 하나였다.

생각해보면 가오라는 말은

원래 얼굴을 내민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게 한국에 와서는

잘난 척이 되었고,

폼 잡기가 되었고,

허세가 되었다.

얼굴을 내미는 말이

언젠가부터

마음을 숨기는 말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날 내가 웃은 건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말이 세서도 아니었다.

가오라는 게

얼마나 가벼운 물건인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너무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태극기 하나에도 멈추고,

분위기 하나에도 깨지고,

술기운 하나에도 부풀어 오르는 것.

가오는 생각보다

몸집이 작다.

삼겹살집에서 배운 건

애국심도 아니고,

질서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었다.

그냥 이것이다.

조용히 먹고,

조용히 웃고,

괜히 가오 잡지 않는 것.

그게

그날 내가 얻은 유일한 교훈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말 많은 설명 필요 없이, 뽀대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