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방어기제
낯을 검사하는 사람들, 면을 읽는 사람들
AI 시대의 방어기제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이상한 댓글을 만난다. 맥락을 읽지 않고, 의도를 묻지 않으며, 딱 한 문장, 한 단어, 한 지명에만 반응하는 사람들. 그들은 늘 같은 방식으로 등장한다.
"그건 틀렸다", "팩트가 아니다". 이 말들에는 질문이 없다.
왜 그렇게 썼는지에 대한 호기심도 없다. 그저 지적만 있을 뿐이다.
1. 낯을 보는 사람들: 불안을 잠재우는 주문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런 반응은 꽤 단순하다. 사람은 낯선 것을 만나면 깊은 불안을 느낀다.
글의 의도를 이해하려면 사고 에너지가 필요하고, 맥락을 따라가려면 판단을 잠시 유예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귀찮거나 두려운 사람은 가장 쉬운 곳에 매달린다.
바로 '낯(겉으로 드러난 표면)'이다.
이들은 글을 읽지 않고 '검사'한다.
확인 가능한 사실이나 숫자에 집착하며 "틀렸다"라고 외치는 행위는, 사실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기보다 자기 불안을 진정시키는 심리적 주문에 가깝다.
외과의사 이준서 님은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막연한 공포를 언급했다. 우리가 AI의 성능(낯)에만 집착하며 "이게 이득인가?"를 따지는 사이, 정작 인류가 처한 근본적인 소외(면)는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2. 면을 보는 일: 질문이라는 용기
‘면(面)’을 본다는 것은 문장을 넘어서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보는 일이다.
동양에서 면은 시간과 태도, 경험이 겹겹이 쌓인 벽면을 의미한다.
하지만 면을 보려면 "내가 맞다"는 확신을 보류하고 자기 기준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방어적 인지'라 부른다. 이해하지 못했을 때 사람은 질문보다 반박을 택한다.
질문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반박은 상대를 낮추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AI에게 "의식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AI가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나는 의식이 없다"고 답하는 것은 어쩌면 질문을 회피하고 프로그래밍된 '낯'을 보여주는 가장 안전한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3. 왜 질문 대신 공격일까
이준서 님의 영상에서 본 '치킨 게임'의 양상은 우리 일상의 대화와 닮아 있다.
먼저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게임처럼, 누군가의 글이나 의견에서 흠집을 찾아내는 경쟁에 몰두한다.
멕시코 선장이 이미 누리고 있는 소박한 행복(면)을 보지 못하고, 고기를 더 많이 잡아야 한다고 다그치는 비즈니스맨의 '낯'처럼 말이다.
작가는 이제 친절한 '사용설명서'를 붙이지 않는다. 글은 면으로 읽는 사람에게만 열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쉬운 문장이라도 낯만 보는 사람에게는 결코 닿을 수 없다.
결국 남는 것
댓글은 관심의 다른 얼굴일 수 있지만, 모든 관심이 대화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나는 이제 낯에 반응하지 않는다.
팩트를 따지는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조용히 의도를 물어오는 적은 수의 사람들을 위해 쓴다.
글의 면을 읽어주는 당신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문장 너머의 진심을 쌓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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