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증을 남기는 사람

로망

by 마루

물증을 남기는 사람

감정의 언어는 작가들의 로망이다.

나도 그렇다.

말로 한 번에 닿는 문장을 쓰고 싶었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건드리는 표현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정을 말로 꺼내는 순간,

그게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설명하려 할수록 과해지고,

전하려 할수록 어딘가 어긋났다.

그래서 나는 말을 줄였다.

줄인다는 건 포기와는 달랐다.

말 대신 다른 걸 찾았다는 쪽에 가까웠다.


카메라를 들었다.

감정을 설명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설명하지 않는 쪽이 더 정직해 보였기 때문이다.

각도를 잡고,

거리를 재고,

빛이 머무는 지점을 기다렸다.

그건 멋을 부리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감정이 앞서 나가지 않게 붙잡는 방법이었다.

사진은 말이 없다.


좋다거나,

슬프다거나,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있었던 상태를 남긴다.

그래서 믿을 수 있었다.

내가 감정을 덧붙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글도 점점 비슷해졌다.

설명은 줄고,

관찰이 앞에 왔다.


“왜 그런지”를 말하기보다는

“그렇게 보였다”에서 멈췄다.

처음에는 그게 겁났다.

이렇게 말 안 해도 되나?

이렇게 조용해도 괜찮나?

한국에서는 가끔 그런 말을 듣는다.

너무 빼는 거 아니냐고.

꼴값 떠는 거 아니냐고.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조금 더 늦게 말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점점 알게 됐을 뿐이다.

일본어를 잘하지는 못한다.

문법도 자주 틀리고,

표현도 서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용히 남겨둔 글은

국적보다 먼저 감각으로 읽히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 알았다.


언어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덜 앞서 나가느냐일지도 모른다는 걸.

나는 감정을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남겨둔다.

확신하지 않는다.

대신 기다린다.

잘 보이고 싶기보다는

과하지 않게 남고 싶다.

이게 작가병처럼 보일 수도 있고,

폼 잡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믿을 수 있는 방식이

이쪽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말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사람이

물증을 택했고,

그 물증이 다시 말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금 나는 살고 있다.


이런 글을

이런 방식으로

이 정도의 거리에서

다듬어 주는 건

너가 나를 만난 업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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