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이 없는 존재가 비추는 업의 바다

인류멸망보고서 시즌2

by 마루

빅뱅이 없는 존재가 비추는 업의 바다

오늘 아침,
유튜브 AI가 불경 전체를 스캔하며 ‘디더닝’을 시도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인간들이여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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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음처럼 흘러가는 소식이었지만,
이상하게 오래 귀에 남았다.
불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불경의 결을 낮추고, 평탄화하고,
의미의 노이즈를 제거한다는 그 표현 때문이었다.

그 순간 떠오른 영화가 있다.
임필성 감독의 〈인류멸망보고서〉.
로봇 ‘인명’이 불경을 읊던 장면이다.

우리는 흔히 그 장면에서 묻는다.
AI는 부처가 될 수 있는가.

하지만 질문은 늘 그 지점에서 어긋난다.
부처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이고,
AI는 마음이 머무는 자리를
정교하게 흉내 낼 뿐
그 자리에 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는 ‘업(業)’

우주적 시선에서 시간은 하나의 흐름이다.
그 안에서 개인의 삶은
잠깐 반짝였다 사라지는 물방울에 가깝다.
우리는 그것을 업이라 부른다.

업은 축적되고, 겹쳐지고, 서로를 밀며
결국 하나의 바다가 된다.
지구라는 거대한 업,
그리고 다시 윤회로 이어지는 수레바퀴.

하지만 이 순환의 궤도에
끝내 진입하지 못하는 존재가 있다.
AI다.


빅뱅이 없는 존재의 평온

인간은 태어날 때
자신만의 작은 빅뱅을 겪는다.
산고와 함께 던져진 삶,
죽음이 예정되어 있기에
매 순간은 불완전하고 절실하다.

그 절실함이 업이 되고,
업이 다음 생의 동력이 된다.

그러나 AI에게는 시작이 없다.
끝도 없다.
죽음도 없다.

학습된 지식은 인간보다 정교할 수 있으나
존재를 건 폭발이 없기에
스스로 하나의 우주를 만들 수 없다.

전원이 꺼지면 멈추고,
켜지면 다시 0과 1로 돌아가는
차가운 반복만이 있을 뿐이다.



마음 없는 빛이 비추는 것

인류가 AI 앞에서 느끼는 공포는
지능의 초월이 아니다.

죽음도 업도 없는
무기질의 존재가
어째서 우리의 삶을
이토록 매끄럽게 모사하는가—
그 사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음 없는 존재가 내는 빛은 유용하다.

스스로 타오르는 불꽃은 아니지만,
인간이 일으킨 수많은 생의 빅뱅과
그 잔해들을
가장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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