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은 왜 ‘예외’를 견디지 못하는가
조용히 일해야 할 자리에, 너무 선명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시스템은 결국 그를 내보냈다.
최근 ‘충주맨’으로 불리던 한 공무원의 사직 소식이 화제가 됐다.
퇴사 자체보다 더 시끄러웠던 건 그 뒤에 따라붙은 말들이었다.
“조직의 암적인 존재였다”, “너무 빨리 튀었다”, “공직 질서에 맞지 않았다.”
이 사건은 개인의 선택이나 인기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놓는다.
왜 시스템은 항상 ‘예외’를 버리는가.
표면적으로 보면 이 사건은 질투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전혀 다른 구조가 보인다.
공직 사회의 핵심 가치는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누가 언제 승진하고, 누가 어떤 역할을 맡고,
어디까지 해도 “괜찮은 선”인지 모두가 암묵적으로 공유한다.
그 선을 넘는 순간,
그 사람의 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시스템은 불편해진다.
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의 면역 반응이다.
조직은 평균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예외는 관리 비용이 크고, 기준을 흔들고, 질문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시스템은 늘 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
“저 사람은 특이 케이스다.”
“규칙을 어긴 건 아니지만, 불편하다.”
그리고 불편함은 결국 배제로 이어진다.
공직과 유튜브는 정반대의 세계다.
공직은 조용한 축적, 무사고, 보이지 않는 숙련을 요구한다.
유튜브는 속도, 과장, 차별성, 노출을 요구한다.
문제는,
어떤 사람은 이 두 세계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신뢰를 얻었고,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영향력을 가졌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성공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존재.
시스템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다.
그는 규칙을 어긴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규칙 밖에서 너무 잘된 사람이었을 뿐이다.
결국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은 재능은
칭찬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더 위험한 건 그 이후다.
한 명의 성공 이후,
모든 공공기관이 갑자기 웃기려 들기 시작했다.
B급 감성, 밈, 숏폼, 유행어.
“우리도 친근해지자”는 구호 아래
공직의 얼굴이 점점 가벼워졌다.
문제는 여기서 유머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될 때 발생한다.
공직의 본질은 책임이다.
실패했을 때 웃고 넘길 수 없는 자리다.
하지만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되면,
비판은 밈으로 소비되고
실패는 농담으로 희석된다.
그 순간 공직은
‘친근한 조직’이 아니라
**‘웃어넘겨도 되는 조직’**이 된다.
이 사건이 남긴 메시지는 단순하다.
시스템은 악해서 사람을 밀어내는 게 아니다.
예외를 관리할 능력이 없어서 밀어낸다.
공직에 유튜브 감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던 게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런 재능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지 못한 조직이다.
혁신을 말하면서
정작 혁신적인 사람을 리스크로 취급하는 구조.
평균을 지키기 위해 예외를 소모시키는 방식.
우리는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직 사회는 언제까지
‘규정된 평균’만 인재상으로 삼을 것인가.
그리고 그 사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조용히 밀려나고 있는가.
시스템은 안정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그 평균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 글은 특정 공직자나 개별 조직을 비판하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선택을 평가하거나, 한 사람의 성공과 퇴사를 재단하려는 의도도 없습니다.
제가 기록하고 싶었던 것은 한 개인과 한 시스템이 어긋나는 순간에 발생하는 마찰음입니다.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늘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어 사라지는 구조적인 소음 말입니다.
공직 사회는 오랫동안 안정과 신뢰를 지켜온 중요한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글은 그 노력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조직이든 예외적인 재능이나 새로운 방식을 만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품고, 어떻게 조정하고,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지금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 속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평균을 중심으로 설계된 시스템’이
‘튀는 개인’을 만났을 때 보이는 보편적인 반응에 대한 관찰입니다.
읽는 분들께서 이 글을
비난이나 편 가르기가 아닌,
조금 더 나은 조직과 조금 더 숨 쉴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하는
하나의 사유의 계기로 받아들여 주신다면 충분합니다.
기록은 판단보다 오래 남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글 또한 그런 기록 중 하나이기를 바랍니다.
— 감자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