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 한 통을 받았다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따뜻한 인사, 공감형 질문, 적당한 이모지.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사람일까, AI일까.
예전 같았으면 굳이 하지 않았을 질문이다.
메일은 메일이었고, 말은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모든 문장 앞에서
한 번 더 멈춘다.
진짜일까.
누가 쓴 걸까.
어디까지 믿어도 될까.
가짜 뉴스는 넘쳐나고,
AI는 너무 자연스러워졌고,
사람의 말투는 점점 템플릿처럼 닮아간다.
문제는 AI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더 이상 ‘믿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의심만 숙련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 메일이 AI로 쓰였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꼈다.
완전히 날것의 감정이 아니었기에,
과장된 친밀감도 아니었기에.
OpenAI처럼
“나는 시스템이다”라고 솔직히 드러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연기해
사람인 척 끝까지 끌고 가지도 않는 상태.
그 애매한 중간이 오히려 편했다.
그래서 나는 그 메일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궁금한 걸 묻기로 했다.
이 서비스는 처음인 사람에게도 괜찮은가요.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해도 되나요.
실험처럼 올려도 괜찮은가요.
그 순간부터,
메일은 더 이상 의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화의 시작점이 됐다.
요즘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다.
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건
완벽한 진위를 가려내는 능력보다,
내가 무엇을 묻고 싶은지를 아는 감각 아닐까.
AI가 범람하는 시대에
사람다움이란 더 감정적인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믿지 못하는 구조가 문제라면,
그 구조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은
의심으로 닫히는 대신
질문으로 여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메일 한 통 앞에서
나는 이렇게 말해본다.
“이건 누구의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질문은 분명하다.”
그 정도면,
시작하기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