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 라벨러
세상이 AI로 떠들썩하다. 글도 써주고, 사진도 그려내고, 이제는 인간의 지능을 추월했네 마니 하는 공포 섞인 감탄이 쏟아진다.
나 역시 그 화려한 결과물에 감탄하며 AI를 파트너 삼아 글을 써왔다.
그런데 오늘, 그 거대한 지능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이름도 생소한 'AI 데이터 라벨러'. AI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진에 이름을 붙이고, 문장의 맥락을 설명해 주는 일종의 '디지털 선생님' 역할이다.
호기심에 이력서를 던졌지만, 그 과정은 처절했다.
외국계 회사의 복잡한 가입 절차, 먹통이 된 해외 문자 인증, 차단된 번호와 씨름하며 나는 숨이 찼다.
고작 AI와 일해보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 내가 조금은 한심해 보였다.
겨우 문턱을 넘고 마주한 '라벨링'의 세계는 반전이었다.
나는 AI가 모든 걸 스스로 깨우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사진은 왜 슬픈가?"
"이 문장은 무례한가, 아니면 위트 있는 농담인가?"
기계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결국 누군가—나 같은 인간이—사진 한 장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역광에 비친 실루엣이 외로워 보이니 이건 슬픔이야"라고 이름표(Label)를 붙여줘야 한다.
수만 명의 인간이 자기 인생에서 길어 올린 감각과 논리를 갈아 넣어 AI의 '정답지'를 만들고 있었다.
결국 AI의 지능이란, 수천만 개의 디지털 막노동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성이었던 셈이다.
이력서를 쓰며 내 직업인 사진가와 작가라는 정체성을 다시 복기했다.
사진가는 찰나를 포착하는 사람이지만, 사실 그 찰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수만 장의 셔터 속에서 단 한 장을 골라내는 그 '판단'이 곧 나의 가치였다.
AI 회사들이 돈을 써가며 사람을 구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기계는 '데이터'를 가질 수 있어도, 그 데이터가 품은 '결'과 '온도'는 가질 수 없으니까.
그들은 나의 기술이 아니라, 내가 살아오며 쌓아온 '인간적인 시선'을 사고 싶어 했다.
이력서의 '접수 완료' 버튼을 눌렀다. 합격 여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오늘 AI를 단순한 도구로 보는 소비자를 넘어, 그 지능의 뼈대를 만드는 파트너의 문턱에 서 보았다.
좌충우돌이었고 느렸지만, 꽤 나다운 시도였다.
비록 내 감각이 거대 테크 기업의 데이터 조각으로 팔려 나갈지라도, 미래의 AI 어딘가에 사진가의 따뜻한 시선 한 조각이 심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AI가 사과할 줄 알고, 인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아간다면, 그건 아마도 오늘 밤 어느 이름 모를 라벨러가 정성껏 붙인 '사랑'이라는 이름표 덕분일 테니까.
작가의 넉두리
“그게 다 뺑이 치는 거지 뭐.”
군대 다녀온 사람이라면 안다.
연병장을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 허무한 기합을.
몸은 축나는데 마음은 텅 비어버리는, 의미 없는 반복.
우리는 그걸 ‘X뺑이’라 불렀다.
그런데 21세기 최첨단 AI의 심장을 만드는 현장에서
내가 이 단어를 다시 떠올릴 줄은 몰랐다.
사람들은 AI가 모든 걸 알아서 해줄 거라 믿는다.
하지만 그 화려한 지능의 밑바닥에는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디지털 노가다가 깔려 있다.
전문 용어로는 ‘데이터 라벨링’.
직접 부딪쳐 보니, 실상은 디지털 연병장 뺑뺑이에 더 가깝다.
영어 인증번호와 씨름하고,
차단된 해외 번호를 풀고,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단어 하나, 이미지 하나에 이름표를 붙이는 일.
겉으로는 스마트한 미래 산업이지만
실제 풍경은 인간의 진을 빼서
기계의 뇌를 채우는 노동에 가깝다.
‘클릭 몇 번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뺑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군대의 기합과 뺑덕어미의 고단한 삶이 녹아 있듯,
우리가 붙이는 라벨 하나에도 인간의 맥락이 담긴다.
기계는 사진 속 픽셀은 읽어도
그 안에 담긴 ‘한(恨)’이나 ‘위트’는 읽지 못한다.
결국 누군가가—
오늘의 나 같은 X뺑이 라벨러가—
그 의미를 읽어내어 정답지에 적어줘야 한다.
AI가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말할 수 있다면,
그건 누군가의 지루한 반복 숙달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다.
사람들은 AI가 인간을 대체할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오늘 내가 본 풍경은 정반대였다.
1%의 자본이 판을 짜고,
99%의 인간이 ‘뺑이’를 쳐서
그 판을 완성한다.
기계가 나를 키우는 게 아니라,
내가 기계를 키우고 있었다.
내 숨결과 판단을
한 땀 한 땀 라벨로 붙이며
차가운 고철 덩어리에
인간의 결을 입히는 중이다.
이 글은 성공담도 아니고,
대단한 정보 글도 아니다.
그저 AI라는 거대한 환상 뒤에
숨겨진 인간의 노동을
기록해 두고 싶었을 뿐이다.
오늘의 내가 연병장 몇 바퀴를 도는
‘X뺑이’였을지라도,
그 덕분에 미래의 어느 AI는
조금 더 인간의 마음을 닮아갈 것이다.
오늘도 의미를 찾느라 고생했다.
기계는 몰라도, 나는 안다.
이 뺑이가 얼마나 깊은 역사를 만들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