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어깨 위로 지나가던 불빛

7번 버스 창가에 앉아

by 마루



그 여자의 어깨 위로 지나가던 불빛


오늘 아침,

횡성행 2번 버스 창가에 앉아 있던 여인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간 햇살을 보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오래전 원주의 어떤 밤이 떠올랐다.


1980년대.

중앙시장 골목을 지나,

관광호텔 지하로 내려가는 좁고 축축한 계단.

형광등이 어슬렁거리며 깜빡였고,

벽에 붙은 포스터는 이미 색이 바래 이름 모를 밴드들이 흐릿하게 웃고 있었다.


우린 대학 동기 셋.

쫑파티가 끝나고 나이트클럽에 발을 들였다.

원주에서 가장 ‘핫하다’던 곳.

안으로 들어가자 담배연기가 인사하듯 밀려왔고,

빨간 갓등은 천장에 달려 마치 열이 있는 눈처럼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맥주잔에 담긴 거품이 천천히 꺼지던 순간,

그곳의 음악은 말없이 우리에게 시간을 마시게 했다.

삐릿, 올리벤트존,

비트는 속삭였고, 조명은 느긋하게 미끄러졌다.

우리는 웃고, 마시고, 무너져갔다.


그 밤엔 여자 하나 없이도 우린 충분히 취할 수 있었고,

말보다 리듬에, 눈빛보다 열기에 더 가까이 서 있었다.

아무도 미래를 말하지 않았다.

그냥,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을 것처럼 흔들렸다.


그러다.

쨍그랑—


유리잔이 우리 발밑에서 산산조각 났다.

잔의 날카로운 끝이,

우리가 애써 눌러온 모든 감정을 찔러 깨웠다.


고개를 돌리자,

남자 하나, 여자 하나.

그는 흔들렸고, 그녀는 침묵으로 굳어 있었다.

우리에게 날아온 잔은,

사실 그녀를 향해 던져진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린 그를 밖으로 끌어냈다.

술기운, 젊음, 정의감.

그 모든 것들이 섞여

“야,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라는 한 마디로 쏟아졌다.


어쩌면 그녀는,

그 잔이 우리에게 날아들었음을 다행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가 아닌, 우리가 대신 받았음을.

그의 분노가 우리 셋의 주먹에 부서진 뒤에도,

그녀는 한마디 말 없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불빛 아래서 마지막으로 거칠게 반짝였다.

거기까지가 기억이었다.


**


그리고 지금,

이 버스 안.


그 여자의 어깨 위로

하나의 빛줄기가 내려앉는다.

마치 오래전 그 밤,

빨간 갓등이 그녀를 내려다보던 그 장면처럼.


나는 창문 너머로 그녀를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빛은,

내 안 어딘가를 조용히 건드렸다.


나는 다시,

젊음의 그 밤으로 돌아갔다.


그때의 냄새,

그때의 음악,

그때의 춤,

그때의 주먹,

그때의 침묵.


모든 것이

그 여인의 어깨 위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처럼 되살아났다.


버스는 다시 움직였다.

나는 오늘도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내렸다.

그러나 코끝엔 아직도,

그 붉은 조명 아래의 연기가 남아 있었다.



작가의 말


결국, 우리의 작은 선택과 순간들이 모여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거겠지.

그날의 한 조각이, 오늘의 우리에게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키듯, 삶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우리를 이끌어가는지도 모른다.

이제 버스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우리의 이야기도 또 다른 방향으로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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