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가 아직 자리
실눈의 물, 그리고 말없이 가라앉은 것들
물안개가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아침이었다.
나는 오래된 오솔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산길이 강물 가까이 닿는 어느 지점.
물 아래로 무언가 스치듯 지나갔다.
여자였다.
물속에서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가늘게 감긴 눈, 마치 슬픔을 다 담고 난 뒤
조금씩 덮어버린 얼굴.
숨을 삼키듯 물이 일렁였다.
나는 그 순간,
아주 오래전 한 할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때 나는 나룻배 안에 있었다.
강 건너 적성으로 향하던 뱃머리.
그 안엔 모두 실눈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할아버지… 왜 다들 눈이 그러세요?”
할아버지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눈동자에선,
햇빛이 아니라 시간이 비껴나고 있었다.
“그건… 칠성 연못 저주라네.”
그는 조용히 말을 풀었다.
“옛날, 이 강에서 일하던 사공 하나가 있었지.
하늘로 오르려던 용을 지게 막대기로 내리쳤어.
비늘이 벗겨지고, 그 자리에서 용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네.
하늘로는 끝내 오르지 못하고,
그 분노는 뿌리처럼 이 땅에 내려앉았지.”
그는 물끄러미 강 저편을 보며 덧붙였다.
“그 사공의 핏줄들은 대대로 실눈을 가졌지.
햇빛을 참는 눈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것을
다시는 똑바로 마주하지 않기 위한 눈이지.”
물소리가 바람결에 닿았다.
나는 다시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떠 있는 것이 아니라,
가라앉고 있었다.
그 슬픔은 수직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고.
그저 고요히, 자신을 덮는 듯이.
나는 그 순간,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내가 교실에서 보았던 그 눈과 닮아 있었다.
고개를 숙이던 여자아이.
입술을 꾹 다물고, 실눈을 뜨고 나를 지나치던 그 아이.
그리고 지금, 물속에서 조용히 가라앉고 있는 여자의 눈.
그 둘 사이의 공백이
이제는 하나의 강물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말없이 가라앉은 것들은,
때때로 이렇게 떠오른다.
물이 말하지 않아도,
그 안의 슬픔은 기억을 부른다.
나는 다시 걸었다.
안개는 조금씩 걷히고 있었고,
강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여자의 그림자는 사라졌지만,
그 실눈은 아직 내 안에 떠 있었다.
그 눈은 햇빛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끝까지 감춘 자들이 남긴 가장 조용한 증거였다.
작가의 말
나는 유년 시절, 단양에서 살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때의 그 여자아이는 지금도 아마 단양 어딘가에서 살고 있겠지. 그리고 그녀의 자식들은, 과연 그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