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라는 이름으로 설계된, 가장 지독한 사랑에 대하여

분노, 서운함, 배신감.

by 마루

오해라는 이름으로 설계된, 가장 지독한 사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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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산술법은 언제나 고장 나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흔히 상대를 이해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은 상대의 진실이 아니라, 내가 정성껏 조립한 오해의 형상을 마주하고 있을 때가 더 많다.

차갑게 돌아선 뒷모습.
대답 없는 메아리.
이유를 알 수 없던 거절.

그 순간, 내 안의 계산기(C)는 쉬지 않고 결과를 토해낸다.
분노, 서운함, 배신감.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그 질문이 사람을 가장 깊은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는 알지 못한다.
내가 미워했던 그 장면이, 사실은 누군가가 나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붙들고 있던 최후의 성역일 수도 있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나는 굳게 닫혀 있던 문 앞에 다시 섰다.
이제는 열어야 할 것 같았다.
발로 차듯 밀어붙인 문은 생각보다 가볍게, 허무할 정도로 쉽게 열렸다.

먼지 쌓인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벽 한쪽에 걸린 빛바랜 사진,
날짜별로 꼼꼼하게 정리된 통장,
그리고 끝이 말려 올라간 낡은 진단서 한 장.

그제야 나는 글자를 읽은 것이 아니라, 시간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오랫동안 무책임한 방관이라고 믿으며 미워했던 그 사람의 몇 년이,
사실은 자신의 무너지는 세계를 겨우 붙든 채
내 쪽으로 불어오는 칼바람을 혼자 막아내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의 떨림(I)은 언제나 데이터 바깥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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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숫자와 정황으로 사람을 판독하려 한다.
그러나 사랑은 자주 그 산술을 배반한다.
계산기가 멈추는 순간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희생.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보호.
끝내 자기 명예보다 타인의 평온을 먼저 놓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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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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