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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Jan 01. 2023

디테일에 강한 휴대폰, 멀리서 봐야 아름다운 모니터

 


아무리 꼼꼼하게 다듬은 보고라도 다른 사람들의 눈을 거치면 어김없이 오타쏟아진. 팀원들의 엄격한 감수를 통과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자료를 회의실 큰 스크린에 띄워놓고  숨어 오류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알맹이가 빠진 너저분한 문장들이 반복되고, 어울리지 않는 단락들이 서로 엉켜 있다. 


나와 팀원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허점 투성이로 돌변한 보고 자료를 볼 때마다 허탈감에 빠진다. 자료 손을 떠사람들 앞에 공개되면(특히, 중요한 회의일수록), 얼마나 얄궂게 심술을 부리는지 잘 아는 터라 회의 전 스크린 점검은 필수 과정이다.  



글을 쓰면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다. 완성한 글을 편집할 때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늘 막막하다. 차라리 다 지워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럴 때는 모니터에서 편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글자 크기를 '본문'으로 해서 모니터를 세로 방향으세워놓고 보, 전체 이 한눈에 들어온다.


태블릿 모니터


내가 사용하는 노트북은 태블릿 겸용이어서 위의 사진처럼 세로 방향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화면을 위아래로 움직여 글을 훑어보, 마치 스크린으로 자료를 볼 때처럼 글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기가 편하다.


모니터에  발자국 떨어져 그림을 감상하듯이 지긋이 쳐다본다. 때로는 모니터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려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괜찮은 생각 떠오르면 단락의 순서를 이리저리 바꿔보고, 겉돌고 있는 문장을 삭제하거나 다른 단락에 끼워 넣는다.


평소 주로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나에게 태블릿 모니터는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는 진리를 한번 더 일깨워준다.



이와는 반대로, 문장과 단락에만 집중할 때는 휴대폰의 작은 화면이 도움이 된다.


나는 글을 쓰는 초기 단계에서 큰 모니터를 먼저 사용하면 생각이 분산되고 불필요하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넓은 빈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조급함과 부담감이 밀려온다. 

글의 전체 흐름에 골몰하다 보면, 생각들이 뒤죽박죽 되어 좀처럼 진도를 내지 못한다.


휴대폰 화면에서 글자 크기를 '제목2'로 해서 글을 쓰면  문장, 한 단락에만 집중할 수가 다. 단락들 간 연결이 부자연스러워도 신경 쓰지 않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간다.



휴대폰 액정화면은 트랙을 달리는 경주마의 눈가리개 역할을 해 준다. 말이 주변과 관중들을 신경 쓰며 달리다가는 경기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독립적으로 작성된 단락들은 나중에 태블릿 모니터 화면에서 마법 같은 편집의 과정을 거쳐 그럴싸한 글로 완성될 것이라고 믿고 일단 앞만 보고 달린다.


'디테일에 강한' 휴대폰 액정화면과 '멀리서 봐야 아름다운' 태블릿 모니터의 역할 분담으로 새해에는 글쓰기가 한층 더 편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러한 원리는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삶 여러 곳에 응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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