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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Dec 25. 2022

입으로 하는 말 vs 글로 쓰는 말


우리 사회에서 말이 많은 두 부류를 꼽으라면 하나는 입이 바쁜 정치인들, 다른 하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일 이다. 전자는 할 말이 많고, 후자는 쓸 말이 많은 사람들이.  부류 모두 세상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쉬지 않고 말을 생산해 낸다.

언론도 말을 많이 지만, 스스로 말을 만들기보다는 주로 남들이 한 말을 전달하는 중개자의 역할에 머물러 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 중에 말을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쩌면 글을 잘 쓰기 위해 말을 아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어느 작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입을 통해 너무 많은 말들이 밖으로 흘러나가 버리면 쓸 말이 빈약해진다고.


작가는 굳이 달변이 아니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글 속에 이미 다 녹여져 있다.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의 얼굴이자 신용인 셈이다.

글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순간부터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의 글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무게감과 무서움을 각오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물론, 악의적인 의도나 함정이 숨어있는 글, 편협과 편견에 사로잡힌 글들도 있지만,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라집단지성이 충분히 걸러 줄 것으로 믿는다.



한편, 정치인들은 대부분 말이 많지만, 말을 잘하는 정치인흔치 . 원래 조리 있게 말을 할 능력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필요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알맹이가 빠진 말을 골라서  수도 있다.

논리적이거나 진실이 담긴 말은 비교적 속이  들여다 보여 정적들에게 반격의 빌미를 쉽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안 지려고, 언제든 말을 바꾸려고 일부러 모호하고 이중적인 전략적으로 구사한다.


정치인들이 하는 말의 또 다른 특징은 원색적이고 파괴적이다. 언론은 들의 말을 가공하고 재조립하여 대중의 입맛맞추고, 대중은 거칠고 자극적인 정치인들의 말에 열광한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을 웬만해서는 글로 남기지 않는다. 입으로 하는 말은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빠르게 잊히고 다시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들이 입으로 하는 말을 더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입과 펜 모두 무섭기는 마찬가지지만, 입이 추악함에 더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둥이, 조(주)둥아리, 아가리 등 입을 가리키는 거친 표현들이 생겨난 것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국은 사회 지도층의 말에 유독 관대하다. 실수를 저질러도 너그럽게 눈을 감아주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기꺼이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려준다.

국민의 삶과 국가의 운명이 걸린 지도자들의 지켜지지 않는 공약은 처벌과 심판은 고사하고 그 존재 자체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잊힌다. 자칭 사회 지도층이란 자들의 '아니면 말고'식의 비방과 중상모락에 대해 법은 무기력하고, 국민들과 언론 모두 한없이 관대하다.


댓글 하나로도 처벌을 받 SNS  마디가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가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에게 글로 된 말은 늘 두려운 것이다. 천 마디 말을 하면서도, 감히 한 마디 문장을 남기지 못한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맹세한 사람들이 글로 된 반성문을 작성하는 어린 학생보다 용기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새해에는 최소한 글로써 국민들과 약속할 수 있는 양심과 소신을 갖춘 권력자들 기다려본다. 글의 무서움에 벌벌 떨며 말로만 실컷 떠들다가 조금만 불리하면 비겁하게 뒤로 숨지 말고, 글로 쓴 언어에 당당해질 수 있는 사회 지도층을 기대해 본다.


'입으로  말'이 '글로 쓴 말'과 동일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글로 된 말'만 믿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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