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와 현상은 뉴튼의 세 가지 운동법칙의 적용을 받는다.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 인구변화는 지구 전체적으로는 관성과 가속도의 영향 하에 있지만, 개별 국가의 상황을 보면 시대에 따라 작용과 반작용을반복하고 있다.
전쟁을 겪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러하듯이 한국도 전후 베이비붐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나치게 높은 출산율에 깜짝 놀란 정부는 60년대에 들어 출산억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도시 지역에서 정부 정책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에도 시골 지역의 출산율은 여전히 정부의 목표치를 초과하고 있었다.
나의 고향에서도 논두렁까지 따라다니며 출산을 말리던 공무원들의 노력이 먹히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더 흘러야 했다. 그 덕분에 나도 여섯 남매 중 마지막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덮어 놓고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정부의 무시무시한 충고를 산불조심 정도로 가볍게 여긴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당시 출산을 억제했던 정부의 판단은 정확했지만, 조금 더 일찍, 더 적극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나의 부모님 세대가 정부의 경고를 잘 따랐더라면인구과밀은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결혼할 무렵에는 출산 정책이 180도로 바뀌어 있었다. '한 자녀보다는둘, 둘 보다는 셋이 행복합니다', 2004년 출산장려 국민표어 공모전 수상작(금상)이다. 하지만,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할 것 같은 두려움에서 못 벗어난 나는 한 자녀의 작은 행복에서멈췄다.
정부의 말을 따르지 않는 가풍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내가 정부의 권고를 잘 따랐더라면 저출산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인구과밀은 나의 부모님 세대, 저출산 현상은 젊은 세대의 책임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물론 불안과 탐욕을 극복하지 못한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자연의 운동법칙에 맞설 수는 없는 것이다.
인구의 증감도 예외 없이 뉴튼의 운동법칙의 영향을 받는다. 전쟁의 작용에 따라 베이비붐이란 반작용이 일어났듯이, 저출산 유행은 인구과밀 작용 뒤에 조건반사적으로 따라오는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생태계는 스스로 복원하려는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다. 부족해진 인구를 보충하려는 욕망과 인구포화로 인한 각종 폐해와 모순에 대한 조절, 이 두 가지 모두 자정활동의 일환이다. 저출산 유행은 훼손된 인구 생태계의 복원을 위한 자연발생적 현상인 것이다.
5천만 명은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힘든 인구 규모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여러 현상들과 수치들이 잘 증명해주고 있다.
나는 인구 전문가는 아니지만, 현재의 출산 추세라면 지금 보다 1천만 명 줄어든 4천만 명 정도에서 감소세가 멈출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 규모에서 약 20% 줄어든 숫자다. 내가 이렇게 예측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 사회의 과잉과 거품이 같은 비율(20%)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천만 명 정도되면 과잉과 거품이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지금 보다는 훨씬 쾌적한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그때부터는 큰 폭의 인구 증감 없이 안정화 단계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사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는 세 가지 운동법칙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결단과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터무니없는 정책에 천문학적 예산을 마구 뿌리지 말고, 먼 미래를 위해서 신중하게 혈세를 집행해야 한다. 현금 지원도 필요하지만, 언발에 오줌누기식 단발성, 선심성 지원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들에게 그들의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해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여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희망과 신뢰가 있으면 정부가 부추기지 않아도(심지어 말려도) 아이를 낳으려고 할 것이다. 머리 숫자를 늘려서 세수를 메꾸겠다는 원초적 산수방식에만 매달리지 말고, 숫자가 곧 희망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바꿔 줄 사회 변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루를 멀다 하고 쏟아지는 저출산과 인구감소를 다룬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인터넷에 기사들과 TV 보도 모두 같은 논조로 지나치게 위기와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 숫자만 조금 바꾸어 같은 내용의 기사를 재탕삼탕 우려먹으면서 마치 대단한 특종이라도 잡은 것처럼 흥분해서 보도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과밀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의 삶이 어떠한지, 벌어 들이는 수입에 비해 삶의 질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이런 모습들도 같이 다뤄줘야 밥값 제대로 하는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칭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뉴스 기사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 협박에 가까운 천편일률적인 억지는 인구감소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떠넘기려는 정부의 주장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언론에서 이미 수없이 다룬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마치 오랜 연구조사의 결과물인 양, 무슨 대단한 아이디어인 양 떠들어대는 모습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이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인구과밀을 방치한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 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살상 무기가 된 과도한 경쟁, 부의 크기로 신분과 서열을 만드는 사회, 갈수록 심해지는 증오와 분노, 지도층이 앞장서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나라!
전문가들의 눈에는 이런 모습들이 왜 안 보이는지,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밀물은 위기가 아니라 썰물 때 갯벌에서 뭔가를 수확하기 위한 숙성과 기다림의 시간이다. 이미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린 인구감소를 위기로만 생각하는 것이 진짜 위기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를 변혁시킬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