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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Apr 03. 2023

과감성과 결단력이 필요할 때

동서양 문화 비교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의 스타일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그가 한국을 떠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축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일단 선수들의 피지컬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졌고, 강팀들을 만나도 주눅 들지 않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다만, 나의 관점에서 볼 때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골대 앞에서의 과감성과 결단력은 여전히 아쉬운 다. 이러한 단점은 역습 시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물쭈물하다가 스피드와 과감성이 떨어져 번번이 기회를 놓치고 만.


반면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유럽 축구를 보면 골대 근처에서 때리는 거침없는 슈팅에 함성이 절로 나온다. 특히, 영국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은 우리들의 시각으로 보기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무모하고 이기적인 슛을 많이 날린다.


선수들의 개성과 스타 기질이 강한 것이 원인이겠지만,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감독의 주문과 팬들의 평가 때문이다. 감독은 전방 스트라이커의 동물적 감각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선수들은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무모한 슛을 가끔씩 골로 연결시킨다. 심지어 비현실적인 거리와 각도에서도 골망을 흔들어 짜릿함을 선물한다.


영국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골대 앞에서 우물쭈물하거나 지나치게 양보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슛을 날릴 때도 체중을 실어 있는 힘껏 때려야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렇지 못한 선수들에 대해서는 다음 날 스포츠 기사에 '소녀 축구', '소심하다' 등과 같은 비난 글이 쏟아진다.

팬들은 설사 골이 안 들어가더라도 과감한 돌파와 역동적인 몸싸움, 위협적인 시도에 더 많은 성공 기회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열광하는 것이다. 손흥민 선수를 비롯하여 유럽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을 보면 그러한 문화에 상당히 적응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축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례들을 통해서 서양인들의 과감성과 결단력이 동양인들에 비해 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의 관점에서 아쉬운 점과 배워야 할 점에 대해 비교해 보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화나 드라마 액션 씬에서 상대를 죽이는 장면이다. 한국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를 죽이기 전에 질질 끌면서 말을 많이 한다. 곧 죽을 사람도 과거의 일을 들먹이며 장황하게 떠든다. 그러다가 어이없게도 탈출을 하거나 상황이 역전되기도 한다.

하지만, 서양의 장면에서는 작별인사는 과감히 생략하고 단호하게 칼을 내리치거나 숨도 안 쉬고 방아쇠를 당겨 버린다. 어떤 장면이 더 재미있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체스와 바둑 또한 동서양 문화의 차이를 실감하는 한 가지 사례다. 체스는 승패를 결정짓기까지 시간이 짧고 상대를 죽여야 이기는 게임인 반면, 바둑은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고 상대를 죽이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 바둑은 상대의 땅을 뺏는 요소도 있지만, 누가 땅을 더 많이 차지하느냐의 게임이다. 무승부로 끝날 수도 있다.


서양이 동양을 기술적으로 추월하게 된 배경에도 결국은 과감성과 결단력이 큰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영원할 것 같은 천년 간의 암흑시대를 과감히 깨고 일어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를 일구어 냈다. 철옹성 같던 왕조체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체제를 부활시켰고, 유럽에 안주하지 않고 외부 세계로 과감하게 눈을 돌렸다.


이 과정에서 저지른 용서할 수 없는 반인류적인 만행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이들의 결단력과 과감성은 동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질이다. 대항해, 신대륙 발견과 이민, 오지와 극지방 탐험, 호기심과 모험, 실험과 투자, 기업가 정신 등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서양인들의 행위를 마냥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과감성과 결단력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해 보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역사 이래 내전 외에는 한 번도 상대를 먼저 침략해 본 적이 없다. 침략을 옹호할 수는 없지만 복수를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한 번쯤은 과감하게 연해주까지 밀고 가거나, 임진왜란 후에는 실패를 무릅쓰고 한 번이라도 일본을 침공했더라면 민족의 기상이 한층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MZ 세대인 아들과 회사 신입 직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업무와 대인관계에서도 맺고 끊음이 분명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기 어렵다고.. 우유부단은 신중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지만, 필연적으로 미련과 아쉬움이 뒤따른다. 더 심해지면 후회와 우울, 결국에는 한(恨)된다.


때로는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 결단이 망설여지는 것은 뒤이어 따라올 책임을 지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꾸물거리고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불행을 자초하고 만다.


내가 막 건너온 강 건너편에 폭죽이 터지고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겨 오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찬바람에 생쌀을 씹더라도 무소의 뿔처럼 나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이끌어줄 누군가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책임지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야 자신을 극복할 수 있다.

무대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험담과 불평불만은 제발 멈추고, 무대 앞으로 당당하게 나와 손을 번쩍 들고 또박또박 질문하고 요구할 줄 알아야 한다. 용기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고 성공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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