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소질이 없는 내가 노래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이 컸다. 다른 하나는 음악을 전공한 아내의 코드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관심을 가지고 많이 보고 자주 듣다 보니 어느새 아내와 토론을 즐길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얼마 전 종영된 미스터트롯2는 첫 방송부터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본방을 사수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 늦은 시간까지 시청하느라 한동안 피곤한 금요일을 보냈다.
아내와 나는 각자 다른 이유로 이 프로그램의 열렬 시청자가 되었다. 원래 노래를 좋아하는 아내는 젊고 잘 생긴 남자 출연자들에 매료되었고, 나는 가수 지망생들과 무명 가수들의 도전하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
참가자들은 매주 치열한 경쟁을 치르느라 지치고 힘들었겠지만, 나는 이러한 리얼 논픽션 프로그램의 긴장과 생동감이 좋았다. 각본 없는 드라마의 묘미와 감동은 어디에도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노래 한곡 한곡에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붓는 모습에는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함과 절실함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피 말리는 순위 발표, 탈락자들의 실망과 눈물, 다음 단계에 진출한 참가자들의 안도의 한숨과 환희의 순간들.
이들이 경연 무대에 서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할 수 있기에 TV안으로 들어가 같이 울고 웃었다. 더 큰 성장을 위한 담금질이라는 것을 알기에 실패와 좌절의 모습에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 주었다.
얼마 전 탑세븐이 최종 결정되고 오디션 프로그램이 종료되었다. 몇 안 되는 논픽션의 짜릿한 프로그램 하나가 종영되어 아쉬움이 컸지만, 다행히 이들의 모습을 현장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일찌감치 티켓을 예매한 덕분에 아내와 나는 무대와 비교적 가까운 자리에서 새롭게 탄생한 스타들의 첫 번째 콘서트를 관람할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아저씨들은 드문드문 보였고, 대부분이 머리띠와 응원봉으로 무장한 여성 팬들이었다. 일부는 등에 가수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쟈켓을 입고 무리 지어 앉아 있었다. 앞뒤좌우에서 질러대는 이들의 함성 소리에 무대에 집중하기 힘들었지만, 나 또한 스타들의 탄생을 축하하고 즐기는 마음은 열성팬들 못지않았다.
가수들의 표정과 몸동작은 경연 프로그램을 볼 때와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대형 체육관이 흔들거릴 정도의 열기와 첫 콘서트의 부담으로 다소 긴장한 듯했지만, 누군가를 이겨야 했던 경연 무대와는 다른 차원의 긴장이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여유와 자신감이 넘쳤고, 기성 가수 못지않은 아우라가 물씬 풍겼다.
가수들은 첫 무대를 마치 마지막 무대인 것처럼 정성과 기운을 담아 열창을 했다. 관객들의 엄청난 함성과 밴드의 사운드를 힘차게 뚫고 나오는 노랫소리에는 자축과 고마움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조금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대형 스크린에 잡히는 가수들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들은 노래를 하는 동안, 수많은 관객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 시간 자신을 뒷바라지해 준 가족들과 치열했던 경연과정들, 눈물 적은 빵을 먹던 시절, 좌절과 시련을 극복하게 해 준 팬들의 응원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3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아내는 작별인사를 건네고 있는 가수들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무대 앞으로 달려갔다. 머리띠를 하고 한 손에는 응원봉을 들고 뛰어가는 50을 바라보는 아내의 뒷모습이 소녀처럼 보였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어깨를 툭 치며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체육관 하늘에 반짝거리는 별들이 보이지?",
아내는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그러네, 오늘따라 유난히 별들이 반짝거리네"라며 환한 웃음으로 응답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