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모바일)과 오디오북이 종이책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다. 책을 접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구분하자면 시각과 청각, 촉각으로 나눠볼 수 있다. 종이책과 전자책이 독서(讀書)라면, 오디오북은 청서(聽書)에 해당된다.
최근 나는 브런치스토리와 '헤드라잇'을 오가며 글을 접하는 두 가지 방식, 읽기와 듣기의 효과에 대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오디오북은 이제 익숙해진 플랫폼이 되었지만, 동일한 글을 두 종류의 감각(시각과 청각)으로 비교해 보니 결과가 흥미로웠다.
헤드라잇 플랫폼은 뉴스와 창작물이 공존하는 곳으로 브런치에서 한번 읽었던 글을 종종 다시 만난다. 그중에는 작가의 의도와 감정을 쫓아가기 어렵거나 내 취향과 맞지 않아 조금 읽다가 그만둔 글도 있다.
그런데, 그 글들을 헤드라잇에서 오디오 기능으로 다시 들었을때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내가 읽다가 그만둔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글로 변신해 있었다. 운전 중에 들으면서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가슴 아픈 사연에는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한다.
AI성우(여자)의 목소리에 이질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발음과 음색이 귀에 촥 달라붙는다. 적당한 속도와 리듬감은 마치 글을 쓴 사람이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휴대폰 화면으로 읽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재미와 감동이 전해진다.
어떻게 해서 이런 (공감)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헤드라잇의 오디오 기능이 나와 찰떡궁합이거나 평소 내 귀가 얇거나, 그도 아니면 나의 읽기 감각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나의 읽기 감각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은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오랫동안 휴대폰의 작은 화면으로 글을 읽느라 눈에 피로가 쌓이면서집중력과 이해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 더군다나 종이책 애호가인 나는 디지털 화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글을 쓸 때는 대만족이다.
확실한 검증을 위해서는 과학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순서를 바꾸어, 오디오로 먼저 들은 다음에 휴대폰 화면으로 같은 글을 다시읽어 보았다. 결과는 여전히 오디오의 승리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과 느낌일 뿐이다. AI성우의 목소리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고, 디지털 기기 화면으로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보았다. 에세이가 가진 몇 가지 특징들에 관한 것이다.
먼저, 대부분의 에세이가 A4 두 세장 정도의 짧은 분량(읽어서 3-4분)이다. 오디오북이 큰 노력 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분량이 많으면 장시간 듣기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몇 번에 나눠서 듣다 보면 글의 앞뒤가 뒤죽박죽이 되어 책의 내용이 또렷하지가 않을 때가 많다.
이에 반해, 에세이는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전에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노래 한 곡의 분량이 3-4분인 것도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에 대한 오랜 검증의결과일 것이다.
에세이 주제가 대부분 친숙한 일상의 이야기라는 것도 오디오에 적합한 요인이다. 우리들 주변(지인)에서 자주접하는일들, 예전에 경험했던 일과 비슷한 이야기는텍스트가 아닌 음성으로 들을 때 마음이 더 크게 움직인다. 밋밋한 에세이 한 편이 성우의 목소리에 실리면 실감 나는 이야기가 된다.
원인을하나 더 추가하자면 에세이를 대하는 나의마음자세다. 나는 글을 읽을 때 먼저 머리로 이해하려는 습관이 있다. 글의 앞뒤를 따져 개연성과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바로 흥미를 잃어버린다.
하지만, 에세이는 글을 쓴 사람의 감정(감성)의 흐름을상상하며문장의 리듬에맞춰서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에세이에 담긴 진짜 이야기가 읽힌다.
에세이는 독자들에게 재미나 감동을 주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글쓴이의 일상 경험과 세상에 대한 생각을 적어 놓은 글이다.눈으로 보든 귀로 듣든,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글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에세이를 이해하는 데는 시각(視覺)과 청각(聽覺)만으로는 부족하다. 심각(心覺)까지있어야 한다.
내가 타인의 글을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낯선 노력에 오디오 음성이 오솔길 하나를 열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