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로마의 공화정 시대에 매년 10월이면 로마 성벽 바깥 마르스 평원에서 전차 경주가 열렸다. 그해 최고의 군마들을 골라 두 필씩 전차에 매여 경기를 펼쳤는데, 우승한 전차의 오른쪽 말이 시월의 말이 되었으며 의식에 따라 창에 찔려 죽임을 당했다. 죽은 시월의 말의 머리와 생식기는 따로 절단되었다.
생식기는 신전으로 옮겨져 피를 빼낸 뒤 재가 될 때까지 태웠다. 재는 로마 건국 기념일에 제물로 받치는 빵에 섞어 넣었다. 장식된 말머리는 하층 시민들의 두 무리, 수부라 지구와 사크라 가도 지구 가운데로 던져졌고, 양쪽 시민들은 서로 말머리를 차지하려고 격렬히 싸웠다. 차지한 쪽이 각자의 지구를 대표하는 탑이나 외벽에 매달았다.
로마의 원동력이자 로마를 지배하는 전쟁과 영토에 그해 최고의 말을 받치면서 로마의 영원한 번영과 영광을 기원하였다"
콜린 매컬로의 로마 역사소설 '마스트 오브 로마' 시리즈 중 '시월의 말' 1권 도입부에 나오는 글이다. 그해 최고의 말은 로마의 여러 신들 중 로마를 특별히 사랑하는 전쟁의 신에게 받치는 최적의 제물이었다.
작가는 한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시월의 말' 의식에 대해 언급하면서 당시 로마의 최고 권력자인 카이사르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500년간 꿋꿋하게 지켜왔던 공화정 체제는 카이사르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리고 제정 시대가 개막되었다. 카이사르는 '시월의 말'이 되었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신은 제정 시대 로마 제국의 번영과 영광을 선물하였다.
한편, '시월의 말' 의식은 독재(자)를 극도로 혐오했던 로마인들이 왕정 시대로의 복귀를 막기 위한 일종의 결의대회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은 최고의 말의 생식기를 가루가 될 때까지 태우는 행위는 독재자가 절대로 로마에 다시 출현하지 못하도록 싹을 자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죽은 말의 머리를 하층민들이 밀집된 지구에 던지는 것은 지금 로마에는 독재(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면서 시민들이 그 상징물을 직접 처리하도록 하여 귀족 계급에 대한 불만이 감소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역사를 읽으며 내 나름의 해석과 상상을 해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로마는 건국부터 기원전 509년까지 왕정을 유지하다가 라틴계 로마인들이 에트루리아계의 폭군 타르퀴니우스를 몰아내고 정치체제의 대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원로원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1년 임기의 선출직 집정관 2명이 국정(특히, 전쟁)을 책임지게 되었다.
당시 로마는 한참 이탈리아 반도 내 여러 부족 국가들을 병합하면서 로마로 편입하는 과정이었는데, 내부 통합을 위해서는 공화정이 이상적인 체제였을 것이다. 왕정시대 삼권분립이라는 권력 분산의 시스템이 이어져 집정관 제도와 호민관 제도를 새롭게 도입하여 공화정 체제를 더 공고하게 완성시켜 갔다.
독재에 대한 거부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공통된 과제였지만, 로마는 노이로제에 가까울 정도로 독재를 혐오하였다. 정치의 중심은 여전히 원로원이었지만, 기원전 300년경에 이르면 제도상으로는 귀족과 평민의 권한이 거의 대등할 정도로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끊임없는 전쟁과 정복으로 영웅들이 수시로 출현하였지만, 정교하게 다듬어진 법과 제도를 통해 이들이 국가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틀어막았다.
영웅들 또한 개선식이 끝나면 칼을 내려놓고 원로원 한쪽에 마련된 자리에 만족했다. 로마의 위대함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걸출한 인물이 국가 권력을 독점하고 장기 집권하는 것에 대해 열광했던(심지어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른 시대, 다른 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한편, 정복이 거의 마무리되어 갈 무렵 로마는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광대해진 제국을 통치하면서 공화정 체제의 한계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한 인물이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 카이사르는 원로원의 안일하고 시대착오적인 마인드와 소모적인 논쟁으로 제국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또한, 야만족들과 대치 중인 방어 라인이 길어지면서 일원화된 지휘체계와 신속한 의사결정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었다.
결국 루비콘 강을 건너고 내전에서 승리한 다음에 자신을 추종하는 군인들과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로마를 본격적으로 개혁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스스로 종신 독재관(딕타토르)이 된 직후 공화정을 사수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원로원 내에서 암살을 당하게 된다. 카이사르는 사라졌지만 역사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500 년간 지켜온 공화정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카이사르가 '시월의 말'처럼 보였을 것이다. 외부와 내부의 적을 모두 물리친 천하무적 카이사르에게 대항할 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해 최고의 말은 다른 말들이 우승할 기회는 고사하고 출전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권력을 독점한 최고의 말이 다른 말들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공화파의 극단적인 행동을 자극하였다. 공포와 두려움의 광기는 독재자를 죽이고 불에 태워 버렸다. 불사조 같은 최고의 말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방심하는 틈을 타 여러 명이 한꺼번에 칼로 찌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사라진 후 바로 이어서 새로운 '최고의 말'이 출현하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시월의 말' 의식을 지혜롭게 피해 가면서 카이사르가 설계했던 로마의 모습보다 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제국을 구축하였다.
제정 시대 뛰어난 황제들보다 로마를 불행하게 만든 황제들이 더 많이 출현한 것은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했던 공화파들의 우려가 맞았음을 증명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10년 정도 더 살았더라면 멍청하거나 포악한 황제들의 출현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인류 역사의 불행(지금 동유럽에서 매일 전해오는 불행한 전쟁까지도)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시월의 말' 의식은 독재를 거부하고 공화정을 지키려는 로마인들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한편, 로마가 낳은 또 하나의 위대함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어도 좋았을 한 필의 '시월의 말'일 것이다. 오늘날 지중해 세계와 유럽은 역사상 최고의 지략과 지성을 가진 천재가 만든 지도 속에서 살고 있다. 어쩌면 카이사르는 동서양 전체 역사에서 유일하게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독재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카이사르가 다른 영웅들처럼 개선 행사가 끝난 후에 원로원 한자리를 차지하고 토론을 즐겼더라면 갈리아 전기 외에도 많은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왠지 이 대목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