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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Sep 09. 2024

배우자 선택 기준 1순위

성격 편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배우자 선택 기준으로 성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22년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 결과 보고서). 그다음으로 직업, 재산, 가정환경, 외모 순이었다. 1996년부터 시작해 8차례에 걸쳐 실시된 조사에서 성격은 매번 압도적인 비율(60% 이상)로 1순위를 차지했다.


인륜지대사가 비즈니스가 된 세태를 생각하면 성격이 1순위로 꼽혔다는 사실이 선뜻 믿기지가 않는다. 삼포세대를 지나 완포세대, N포세대까지 등장하는 마당에 남자들이 외모를 1순위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과 여자들이 직업이나 재산을 1순위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어쩌면 사람들은 세속적인 조건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소신과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미혼자라면 배우자가 될 사람이 돈이나 외모가 아닌 자신의 참모습을 알아봐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기혼자라면 과거 다른 조건에 정신이 팔려 놓쳐 버린 '좋은 성격'을 생각하며 후회와 미련을 담아 성격을 1순위로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바람과 기대와는 달리 성격은 갈등과 불화를 조장하며 남녀사이를 매몰차게 갈라놓고 있다. 2030 세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연인과 이별하는 원인으로 성격차이를 꼽은 비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남녀 각각 78%). 이혼사유에서도 성격차이는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이혼소송 기준 약 25%). 부부싸움이나 가정불화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동안 배우자 선택 기준에서 성격이 줄곧 1순위로 꼽혔다는 것은 현실에서 이상형의 성격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성격은 나와 맞으면 천생연분이지만, 조금만 삐끗해도 쓰라린 상처를 안겨 . 성격이 가진 이러한 양면성이 배우자 선택을 어렵게 하고 결혼기피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성격이 청춘남녀들을 힘들게 하는 또 하나의 원인은 검증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료나 육안으로 검증이 가능한 직업, 재산, 외모 등의 조건들은 소개과정이나 교제 초기에 대부분 걸러진다. 서로 조건이 맞지 않으면 만남 자체가 성사되지 않거나 교제를 시작하더라도 얼마 못 가 중단되어 버린다. 밀당이나 고민을 하지 않아도 겉으로 드러난 조건들이 알아서 정리를 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성격검증은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자신의 감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성격을 검증하기 위한  방법들이 동원된다.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여행을 하고, 집을 방문하고, 스킨십을 하고, 심지어 동거까지.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웬만해서는 '이 사람이다' 싶은 확신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상대가 나에게 확신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상대를 완벽하게 파악하고야 말겠다는 욕심이 더 큰 원인이다. 물론,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인데 검증은 아무리 철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성격차이가 몰고 올 끔찍한 후유증과 파괴력을 생각하면 결혼을 못 하는 이 있더라도 상대의 실체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싶을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사람의 성격은 완벽하게 파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설사 그러한 느낌이 들더라도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성격은 잠시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정해진 방향 없이 끊임없이 바뀌어 간다. 상황에 따라 바뀌고, 상대에 따라 바뀌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계속 변해 간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예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 성격이다. 오죽하면 수 십 년을 같이 산 배우자의 성격조차도 모르겠다고 하겠는가!


상대의 성격을 대략 80~90% 정도 파악했다면(작정하고 사기 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배우자 선택에 필요한 됨됨이와 가치관은 확인된 셈이. 여기까지 파악하고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을 의심해봐야 한다. 안목이 부족하다면 배우자 선택을 잠시 미루는 것도 방법이다. 결혼을 조금 늦게 하더라도 안목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다. 특히, 개성이 강하면서 소통에 서툰 디지털 세대라면 안목은 인생이 걸린 필수 덕목일 것이다.   


결혼생활이 힘든 이유는 예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 그 많은 일들을 무슨 수로 다 예상해서 서로의 생각(성격)을 맞춰본단 말인가! 그랬다가는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받으며 이별통보를 받기 십상이다. 


아직까지 확인이 안 된 미심쩍은 10~20%는 두 사람의 차이와 부족을 흡수할 완충 공간이다. 앞서 검증된 기본기(80~90%)만 튼튼하다면 그 차이와 부족 얼마든지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임기응변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몰랐던 성격이 새로운 매력이 되어 권태기에 활력소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


성격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과도한 의미 또한 배우자 선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배우자의 성격은 그냥 일반적 개념의 성격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인성이 되어야 하고 인격이 되어야 한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시켜줘", "어디 괜찮은 사람 없어?" 여기서 말하는 좋은 사람과 괜찮은 사람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가! 배려심 많고, 이해심이 넓고, 매너 좋고, 인간적이고, 자상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 이 정도는 되어야 좋은 성격, 괜찮은 성격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코드가 맞아야 하고 케미까지 통해야 한다. 조금 더 멀리 가면 점쟁이의 사주와 궁합까지 통과해야 한다.


성격에 대한 이러한 지나친 기대는 결혼시장에 새로운 '주의'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물질 만능주의와 외모 지상주의에 이은 성격 이상(理想) 주의!



뛰어난 연기력이나 인연의 행운으로 어렵게 선택의 관문을 통과했더라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2차 검증이 기다리고 있다. 1차 때와 다른 점은 배우자와 일상을 함께 하면서 평생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동안 성격을 떠받쳐 주고 있던 다른 조건들(직업, 재산, 외모 등)의 도움은 더 이상 받을 수가 없다. 결혼 전의 성격은 재산이나 외모의 후광을 받으며 어느 정도 윤색된 성격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2순위 이하의 기준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버린다. 후광 효과가 사라진 성격은 연기력까지 약해지면서 볼품없는 모습으로 전락한다.


동물들은 각자 다양하고 재밌는 구애행동을 가지고 있다. 특히, 새들의 구애행동은 사람만큼이나 유별나다. 수컷새는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먹이를 잡아다가 암컷새에게 선물로 준다. 깃털을 세우거나 변색하여 외모를 최대한 화려하게 꾸미기도 하고, 친구 새들을 불러 모아 암컷새 앞에서 합동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짝짓기에 성공하고 나면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짝을 이룬 후에도 구애행동을 계속하다가는 병이 생기거나 생명이 단축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짝을 이룬 후에도 구애행동을 계속 요구받고 기대하는 욕심 많은 동물이 있다. 바로 사람이다. 연애 기간에 보여준 천사 같은 마음과 멋진 모습이 평생 동안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기대가 결혼생활을 힘들게 하고 결혼에 대해 지레 겁을 먹게 다. 상대를 특별한 존재로 모시겠다는 구애행동에는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 평소와  다름없다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상대가 내게 보여주는 구애행동은 인생의 선물이다. 선물은 가끔 주고받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지나친 욕심이 되어 결혼생활을 위협하는 불씨가 된다. 



기준이 몇 가지이든 여러 기준들이 합쳐져 총합을 이룰 때 비로소 배우자 선택의 최종 기준이 된다. 직업이나 외모만 보고 선택해서도 안 되고, 성격 하나만 보고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말도 과장된 면이 있다. 만약, 어느 하나만 보고 배우자를 선택했다면 그건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이다.


경제력과 외모의 부족분은 성격이 메우고, 성격이 부족한 부분은 경제력이나 외모로 메울 수 있다. 경제력과 외모의 비중이 조금 높다고 해서 속물이라고 비난하거나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성격의 비중이 높다고 해서 고상하고 순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경제력과 외모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자 생존과 종족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호감이나 사랑의 감정 또한 물질과 외모의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생기는 법이다.


무엇보다 성격은 개성과 정체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사전적 의미의 성격, 즉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로써 존중받아야 한다.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성격이 건강하고 매력적이다. 때로는 화를 내고, 고집을 피우고, 다투기도 하는 성격. 그런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서로 화해하는 그렇고 그런 보통의 성격 말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사람의 배우자가 되기 전부터 사랑스러운 자식으로, 착한 동생으로, 좋은 친구로, 훌륭한 동료로 살아오고 있다. 그 정도 성격이면 퇴근 후 현관 안에서도 충분히 좋은 성격, 괜찮은 성격으로 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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