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가 되어 잃어버린 것들

by 시원


50대도 어느새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 5년은 50대가 왜 인생의 대전환기인지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동시에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결별은 늘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나이 들어 흔히 하는 '비우고 내려놓는다'는 말은 뒷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절과 상실을 겪은 후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마치 자발적으로 비우고 내려놓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50대라는 사실은 여자들이 가장 먼저 일깨워주었다. 40대까지만도 해도 나는 여자들에게 꽤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나는 여자들에게 최대한 매너를 갖추고 친절하게 대했고, 여자들도 나에게 과분할 정도로 호의적이었다. 내가 하는 부탁을 우선적으로 처리해 주었고, 위기에 처했을 때는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우연히 마주치는 눈빛에 가슴이 두근거린 적도 많았다. 여자들의 눈빛에는 이심전심으로 느낄 수 있는 설렘과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50대가 되자 여자들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여자들의 특별 대우를 받는 인기남이 아니었다. 그저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나이 든 아저씨로 전락해 있었다. 얼마 전까지 나와 썸을 타던 눈빛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어쩌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순식간에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남자로서의 매력이 다했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여자들 앞에서 마음이 위축되었다. 무엇보다 든든한 내 편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큰 타격이었다.


여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즈음 인간관계의 다른 한 축이 무너지고 있었다. 50대 초반, 직장 내 조직개편이 이뤄지면서 나는 하루아침에 한직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위상이 추락하자 인간관계도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어제까지 나와 형동생 하던 동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충격과 자괴감에 몸과 마음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퇴물이 되고도 끝까지 버티던 선배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젊은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나이가 들어 외톨이가 되는 것은 신체 노화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만남과 이별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일과 사람에 지칠 때면 외톨이가 편할 때도 있다. 돌이켜보면 친구들과는 결혼과 동시에 이미 멀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인간관계의 단절과 상실이다. 인연도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막상 내가 겪게 되자 실망과 배신감을 좀처럼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여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동료들과의 관계가 끊기면서 세상은 적막강산으로 변했다. 외로움 보다 더 무서운 것은 권태와 무기력이었다. 성장 엔진이 멈춰버린 50대 직장인의 삶은 새로울 것도,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저 따분하고 밋밋한 일상이 반복해서 이어졌다. 버티기 모드로 전환한 낡은 인생에 새로운 꿈이 꾸어질 리가 없었다. 미래는 더 암울했다. 건강과 주머니 사정 모두 지금부터 조금씩 나빠질 일만 남은 미래는 미리 생각하고 싶지 않은 두려운 세상이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싫어지면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50대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어보면 온통 옛날이야기뿐이다.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과 잘 나가던 리즈 시절을 그리워한다. 가슴 아픈 이별과 끔찍한 군대생활조차도 이들에게는 추억거리가 된다. "그때가 참 좋았지", "옛날이 살기 좋았는데" 현재의 삶이 고달플수록, 미래가 불안할수록 과거는 온통 아름다운 시절로 둔갑해 버린다.


한편 40대까지는 삶의 초점이 늘 미래에 맞춰져 있었다. 그럴싸한 계획이 있었고 막연하지만 성공과 대박을 꿈꾸며 살았다. 지금 보다 더 풍족한 내일을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이었다. 40대까지 미래만 생각하며 살던 삶이 50대가 된 후에는 과거에 매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살면서 지금을 사는 방법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다. 50년 가까이 지금이 없는 삶에 익숙한 나머지 50을 한참 넘기고도 여전히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바로 지금, 지금을 사는 습관을 들이지 못하면 남은 인생도 과거에 사로잡혀 추억과 후회를 곱씹으며 보내게 될 것이다.


이미 떠나버린 여자들의 관심과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지금'은 관점만 바꾸면 지금 당장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대전환기를 겪으면서 많은 것들과 결별했지만, 이거 하나는 깨달았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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