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온이 교차하는 순간

호떡아이스크림의 놀라운 식감

by 시원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물을 마시는 것이다. 먼저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바로 이어 차가운 물을 마신다. 이런 식으로 온수와 냉수를 번갈아 들이켜다 보면 금세 몸이 깨어난다. 같은 온도의 물을 마실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사우나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드나들다 보면 피로가 풀리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핀란드 사람들이 사우나에서 몸을 덥힌 뒤 곧장 차가운 호수로 뛰어드는 것도 온도 차이가 만든 짜릿한 쾌감을 즐기기 위함일 것이다.


상반된 두 온도가 교차하는 순간에는 늘 쾌한 자극이 있다. 더운 여름 땀을 흘린 뒤에 마시는 시원한 음료나 추운 겨울 따뜻한 차 한잔에도 활력이 생긴다. 호떡 아이스크림은 내가 즐겨 먹는 간식이다. 따뜻한 탄수화물과 차가운 유제품이 만나 새로운 차원의 달콤함을 선사한다. 호떡과 아이스크림은 입안에서 부서지고 섞이는 동안 서로의 온도를 주고받으며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시원하고 부드러운 호떡이 씹히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따뜻하고 쫀득한 아이스크림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린다.


가을은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충돌하는 계절이다. 어내려는 세력과 버티려는 세력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엎치락뒤치락하며 자리다툼을 벌인다. 두 기운의 충돌 덕분에 세상은 풍요를 만끽한다. 온 산이 붉게 물들고, 들판에는 곡식이 여물고, 나무에는 탐스러운 열매가 달린다. 이러한 충돌은 이듬해 봄에도 일어난다. 남쪽에서 올라온 따뜻한 공기가 겨울 내내 응축된 차가운 공기와 충돌하면서 세상을 흔들어 깨운다. 마른 가지에 새잎이 돋고, 꽃이 만발하며, 새와 나비가 날아든다. 두 공기의 충돌에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소생과 결실은 거대한 충돌과 정교한 균형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마치 암수 한쌍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과 같은 신비스러움이 느껴진다. 새로운 문명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을 것이다. 폭발이 클수록 변화는 더 크고,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순간이 있다. 여명과 어스름은 하루 중 내가 자연과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여명을 맞으며 명상을 할 때는 온전한 나를 만난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도 모니터 앞에 앉을 힘을 얻기도 한다. 저녁, 퇴근 후 산책을 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먼 산에 희미하게 걸린 노을과 서서히 깔리는 어스름에 공원은 고즈넉하고 사색적인 분위기로 바뀐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여명과 어스름은 충분히 밝지 않은 낮과 완전히 어둡지 않은 밤이 희미하게 교차하는 순간이다. 채워지지 않은 여백의 아쉬움이 오묘한 풍경을 연출한다. 극명한 온도 차이는 아니지만 잔잔한 여운이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나의 부족함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설렘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온도에만 익숙해진 삶에서 울림과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와 다른 상대에게 선뜻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상대가 들어올 수 있도록 작은 틈 하나는 열어두고 살아 볼 일이다. 나와 정반대의 온도를 가지고 있지만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고마운 계절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0대가 되어 잃어버린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