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안 해도 돼
나이를 먹을수록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기쁨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자유가 더 크게 다가온다.
젊은 시절에는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참 많았다. 밥벌이를 위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내키지 않는 모임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는 소리는 수도 없이 들으며 살았지만, 그렇게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아무 때나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짐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50대 중반을 훌쩍 넘겼다. 여전히 책임과 의무의 중압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이를 먹을수록 하기 싫은 일의 비중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일상의 소소한 불편이든 세상의 풍파든, 오랜 반복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막혔던 숨통이 조금 트이는 듯하다.
중년의 자유는 세월에 묻어온 선물 같다. 내가 애쓰지 않아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세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변해 간다. 이제는 선배라는 이유로 지갑을 먼저 열지 않아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술자리가 줄어들었다. 피 말리는 승진 경쟁도 더 이상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성인이 된 아들은 엄마 아빠의 잔소리에서 벗어났다. 덕분에 아내와 나는 훈계의 수고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살다 보면 새장문이 열릴 때가 있다.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그동안 보지 못한 더 넓은 세상이 펼쳐진다. 나이가 들어 사회 통념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해서, 오랜 관습의 대열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큰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설사 손해나 불이익이 따른다 해도 원하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쯤의 대가는 치를만하다. 지금이 아니면, 나는 법을 영영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번 추석에는 오랜만에 귀성 대신 여행을 택했다. 성묘를 미리 다녀오고 형제들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던 아내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해 질 무렵, 바닷가에 나란히 앉은 우리 앞을 갈매기 몇 마리가 스쳐 지나갔다. 힘차게 날갯짓하는 모습이 마치 "너희도 이렇게 한번 날아봐"라며 시범을 보이는 듯했다.
회식문화가 많이 달라졌지만 지금도 가끔 늦은 밤까지 '맥주 한잔 더'와 노래가 이어지곤 한다. 술도 약하고 흥도 부족한 내게는 고역이다. 젊을 땐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선다.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마시며 숙취에 시달리는 동료들을 차분히 둘러본다. 어제 나는 그들보다 4시간 일찍 귀가했고, 택시비를 아꼈고, 2차와 3차 분담금에서도 제외되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배신자라는 소리는 승리감에 도취한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정은 맨 정신으로도 충분히 만들어진다.
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빈 공간은 새로운 욕구를 일깨운다. 손해를 만회하려 하거나, 예전의 익숙함이 그리워 새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실수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야 한다. 자유의 맛에 익숙해질수록, 내려놓을 수 있는 것들도 많아진다.
모임이 줄어들면서, 퇴근 후 산책의 여유가 생겼다. 천천히 걸으며 생각을 비우다 보면, 몸이 가벼워지고 덩달아 머리까지 맑아진다. 텅 빈 마음에 뭐라도 채울 것 같아 모니터 앞에 자주 앉는다. 글문에 막혀 멍하니 보내는 시간조차 자유롭다. 지금의 이 고요한 시간은 인생이 나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