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악당을 대처하는 방법

by 시원


가끔 악당을 만날 때가 있다. 악당은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고 못살게 군다. 나를 모함하여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고, 내가 힘들게 이루어 놓은 것을 강제로 빼앗기도 한다. 협박과 폭행,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한다.


내 기억 속 첫 번째 악당은 유년 시절 골목을 주름잡던 깡패들이었다. 쳐다봤다는 이유로 주먹을 날리고 아이들의 코 묻은 용돈을 갈취했다. 교실 안은 골목 보다 더 살벌했다. 행인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교실은 가두리 양식장이었다. 더군다나 작은 악당들 뒤에는 해결사 노릇을 하는 부모와 폭력을 방관하고 피해 신고를 묵살하던 선생들, 아니 '어른 악당들'이 버티고 있었다.


악당은 피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떼처럼 내가 어디에 있든,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늘 내 주변에서 공격 기회를 노린다. 골목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낯선 여행지에서 내 앞에 불쑥 나타날 때도 있다. 교실에서 같이 수업을 듣기도 하고, 직장에서 함께 일을 하기도 한다. 오랜 친구가 어느 날 사기꾼으로 돌변하는가 하면, 새로 이사 간 아파트 바로 위층에는 밤마다 악당이 출현한다.


선량한 사람이 악당에 맞서 승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니, 제대로 방어하기 조차 쉽지 않다. 특히, 내부 악당의 공격에는 거의 속수무책이다. 내부 악당은 같은 공간에서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거나 어떤 식으로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 나의 과거와 장단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나를 어떻게 이용하고 공격할지, 어떻게 하면 나를 굴복시길 수 있을지 잘 알고 있다.


외부의 낯선 악당이 무섭고 끔찍한 것은 사실이지만, 확률과 통계라는 수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평범한 사람이 평생 동안 극악무도한 악당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한 번의 공격에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철저히 경계하고 대비하는 덕분이다. 선량한 사람들은 악당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담장을 높이 쌓고 이중삼중으로 문단속을 한다. 호신술을 익히고 늦은 밤에는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다. 목욕탕에서는 문신이 있는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모르는 전화번호는 무시한다. 골목 곳곳에 방범 카메라를 설치하고 밤새도록 가로등을 환하게 밝힌다.


이에 반해, 내부 악당에 대한 방비는 느슨하고 허술하다. 악당의 뛰어난 위장술과 생존과 직결되는 가공할 공격력 탓도 있지만, 악당의 존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허접한 안목과 설마 하는 방심 또한 악당의 공격 성공률을 높이는 요인이다. 심지어 악당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상처를 입고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선량한 사람은 대체로 자기주장이 세고 자신의 성향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은 남의 조언이나 충고를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동료 사이에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그 친구 성질이 조금 더럽긴 해도 양심을 저버릴 정도는 아닐 거야' 이러한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악당의 눈빛은 한번 더 번뜩인다.


설사 악당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하더라도 정면으로 맞서거나 "악당이야!"라고 외치기는 쉽지 않다. 섣불리 대응하다가는 악당이 파 놓은 더 깊은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법(혹은 직장 인사팀)에 호소하자니 증거가 충분하지 못해 보복이나 역공을 당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피해 정도가 세상의 기준으로 도덕과 양심의 영역이라면 선량한 사람이 이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상처를 입고도 속으로 삭이고 버텨야 한다면 고통은 배가 된다. 악당의 악의적인 거짓말과 명예롭지 못한 막장 폭로에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와 명예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교활한 악당은 웬만해서는 선량한 사람에게 반격할 여지나 역전의 기회를 허용하지 않는다. 상대를 한 번에 쓰러뜨리지 않고, 상대가 견디지 못해 달아날 정도로 세게 몰아치지도 않는다. 자신이 가진 지위와 종속(갑을) 관계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서서히 단물을 빼먹으려고 한다. 부모나 경찰이 개입하지 않을 정도로 괴롭히고,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부려먹고, '미투(Me, too)'에 참여하지 않을 정도로 성희롱을 한다. 판이 깨지는 것은 악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다만, 상대가 경쟁자라면 악당의 최종 목표는 상대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공격하는 사람은 수비하는 사람에 비해 훨씬 더 치밀하기 마련이다. 악당은 선량한 사람 보다 더 깊이 생각하고, 한 발짝 더 빠르게 움직인다. 악당은 잠시도 쉬지 않고 모든 감각을 가동하여 선량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착한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겁을 먹는지, 어떤 말에 잘 속아 넘어가는지 꼼꼼하게 기억한다. 내부 악당은 돈과 권력이 있고, 똑똑한 머리와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다. 단순하고 무식한 외부 악당에 비해 훨씬 더 교활하고 계획적이다. 심지어 잔인하기까지 하다.


이에 반해, 선량한 사람은 상사가 악당이라는 의심이 들면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고, 악당 전력이 있는 동료는 아예 상종 조차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는 악당의 2차, 3차 공격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할뿐더러, 악당의 특징과 공격 방법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선량한 사람들끼리 모여 악당을 비판하고 성토하는 것만으로는 악당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다. 악당과 친하게 지낼 필요까지는 없지만, 혐오와 두려움 때문에 악당을 지나치게 멀리하다가는 오히려 악당을 도와주는 꼴이 되고 만다.


선량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먼저, 자신을 적절하게 감출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착한 심성과 성향을 노출시키는 것은 중요한 정보를 악당에게 갖다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견물생심이라고 상대가 순진하다는 것을 알면 누구라도 잠재적 악당이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타고난 악당보다는 환경이 만든 후천적 악당이 더 많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악당은 10년 동안 착한 가면을 쓰고 있다가도 한순간에 가면을 벗어던지고 상대의 모든 것을 빼앗고 파괴한다.


선량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착하다는 것을 자기 입으로 자랑하거나, 주변으로부터 착하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착한 이미지가 하늘의 심판이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황에서 미덕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악당에게 공격의 기회를 제공하는 치명적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선량한 사람은 성향상 자신만큼 착한 사람, 착한 순도 100%만 친구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 상대도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양심과 도덕을 잘 지키고, 자신과 같은 강도로 악당을 혐오하기를 바란다.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끝까지 내 편으로 남아 있을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문턱을 낮추고 범위를 넓혀야 한다. 악당과 같은 편이 아닌 것만으로도 이미 편이나 마찬가지다. 기준을 더 낮추면 악당조차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 선악의 경계에 살짝 걸쳐 있는, 악의 순도가 묽은 악당은 나의 노력이나 악당에게 돌아갈 보상에 따라 얼마든지 전향시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강한 사람을 내 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강자는 착하지 않다거나 착한 사람은 모두 약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주변의 강한 사람을 악당으로 오해하기가 쉽다. 하지만, 강한 사람들 중에도 착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부자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있고, 똑똑한 사람, 힘이 센 사람, 총칼을 잘 다루는 사람들 중에도 착한 사람들이 섞여 있다. 교실에도 힘이 센 착한 친구가 있고, 반장이나 전교 회장도 악당이 아닐 수 있다. 날마다 고함을 치며 나를 괴롭히는 상사도 지금 쓰고 있는 악당의 가면을 벗고 나면 하얀 속살이 드러날지 모른다.


착하고 약한 사람과 손을 잡기는 어렵지 않지만, 강한 사람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가진 능력이나 매력이 부족하다면 연출된 우연이라도, 그것마저 안된다며 최소한 커피값이라도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내부 악당과의 전쟁은 하루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다. 외부 악당처럼 회피와 차단으로 일관하다가는 더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생존을 위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내부 악당은 끊임없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할 것이다. 적어도 수 십 년간 부대끼고 싸우고 버틸 각오는 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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