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매거진 연재를 시작하며
"말랑말랑하게 살아도 괜찮아."
나는 오래전부터 이 말을 기다렸다. 누군가 나에게 한 발짝 늦어도, 덜 단단하게 살아도 괜찮다는 말을 해 주기를. 세상은 항상 단단하게 살기를 요구했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삶, 오십 대에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내 아이에게 반드시 해줘야 하는 말을 비롯 세상은 해야만 하는 요구들로 넘쳐났다.
세상이 던지는 삶의 무게는 '빠르게, 강하게, 단단하게'였다. 나도 그렇게 살기를 원했다. 퇴직 후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살기 전까지는.
돌이켜보면 내 삶 또한 쉼 없이 단단함을 증명하라는 시험장이었다. 우리나라 최초 직업상담원이자 직업상담직공무원으로 28년간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다. 취업의 두려움에 떨던 청년, 삶의 무게에 지쳐 고개를 숙인 장년, 새로운 길 앞에서 두 눈을 반짝이던 이들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웃는 동안,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흔들리지만, 그조차도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그 순간 건네는 '괜찮습니다' '괜찮아'라는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생의 온도를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것을.
느릿느릿,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 단단하지 않아도, 말랑말랑해도 삶은 한없이 부드러워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나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나에게 단단하라고, 멈추지 말라며 다그쳐왔던가.
한 발 떨어져서 세상을 바라보니 그제야 내가 보였다. 내 안에 숨어 있는 갈망이. 나는 말랑말랑하고 살고 싶다는.
어떤 삶도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남에게 편해 보이는 삶도 들어가 보면 첩첩산중이 있고, 태풍이 있다. 산허리를 따라 펼쳐진 길처럼 빙글빙글 한없이 꾸물거리기도 하고, 뿌연 안개에 가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부드러운 물이 바위를 깎듯이 우리 마음의 틈새에는 부드러운 다독임이 있다.
길가에 핀 작은 들꽃이 걸음을 멈추게 하고, 나를 웃게 만든다. 그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왜 걸어가야 하는지 알려준다. 말랑말랑한다는 건 바로 그런 순간들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서툴러도, 때로는 멈춰 서 있어도 괜찮다는 것.
'말랑말랑해도 괜찮아'는 그런 여정을 담고 싶다. 이 이야기는 평균 나이 육십 대인 네 여자가 올봄부터 함께 나누는 느긋한 여행기에서 시작된다. 세월이 스며든 얼굴이지만 여전히 셀레는 소녀들. 걷고, 배우고, 웃으며 인생의 새로운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삶의 말랑말랑한 결을 따라 흘러가는 밝고 따스한 철학이 스며들어 있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삶이 꼭 단단해야만 버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 부드럽게 살아도, 느릿느릿 살아도, 우리는 자기만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깨진 유리 조각도 모으면 새로운 모자이크가 되듯, 우리의 상처와 흔들림도 하나의 무늬를 만든다.
말랑말랑해도 괜찮다. 흔들리는 것이 오히려 살아 있다는 증거다. 부드러움 속에서 진짜 강인함이 자라난다. 너무 단단하면 부러지고 한번 꺾이면 붙이기 어렵다. 말랑말랑한 것은 구부러질지 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회복탄성이 그만큼 크다. 삶은 그렇게 우리를 길러낸다.
나는 이 글이 누군가 하루에 작은 쉼표가 되기를 바란다. 숨 가쁘게 달리다 지쳐 잠시 멈추었을 때, 마음에 닿는 조용한 손길이 되길. 우리의 말랑한 삶이 서로를 어루만지고 빛이 되기를 믿으며. 마음이 흔들리고, 발걸음이 서툴러 수시로 넘어져도, 문득 '괜찮다'며 자신에게 속삭이며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말랑말랑해도 괜찮아'로 문을 두드린다. 문소리가 들리면 '괜찮다'라고 말해 주는 속삭임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를.
연재는 주 3회(월, 수, 금)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