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있는 한 우리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언니 우리 도착했어."
"벌써, 얼른 준비할게."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15분이다. 7시 40분에 만나기로 해서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착했다는 전화에 '그러면 그렇지. 이럴 줄 알았어.' 혼자 웃는다. 다들 제시간에 온 적이 없다. 약속을 하면 항상 빨리 온다. 적어도 10분에서 많게는 30분 이상. 그만큼 만남이 즐겁다는 거다.
미플러스 4인방의 말랑말랑한 여행을 떠나는 날. 미플러스포의 여행은 서로를 기다리고 반기며 시작된다.
오늘의 여행지는 변산반도. 꽃과 바다, 햇살과 바람이 어우러진 마실길로 향하는 길.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샤스타데이지에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오기로 했다. 하얗고 순수한 데이지 꽃처럼, 우리도 환하게 피어 보기로 했다.
각자 개성에 맞게 차려입고 온 우리를 본 순간, "와, 이쁘다." "멋지다" "우아해"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비탈진 산길에 길게 이어진 샤스타데이지 꽃밭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를 반겨주었다. 하얀 꽃잎 사이사이로 노란색이 황금처럼 부서져 내렸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살랑이는 꽃잎이 바다를 배경으로 살랑거렸다.
"와, 천국이 따로 없네. 여기야. 여기. 나 사진 찍어줘."
우리는 무더기로 핀 꽃잎 사이사이에서 퐁당퐁당 튀었다.
꽃도 우리도 피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서로 스며들었다. 그저 서로를 담고 웃으며 걷는 그 시간이 우리 인생의 정점이었다. 환하게 피어난 샤스타데이지처럼. 햇살은 부드럽게 등에 내려앉았다. 노랑, 연두, 하늘빛 우산은 햇빛을 가려주는 소품이자 사진 속 액자처럼 우리와 일부가 되었다.
푸른 하늘 아래 하얀 꽃과 바다가 보이는 산비탈에 형형색색의 양산을 든 네 여자의 모습은 삶의 여백 속에서 피어난 한 편의 시이자 그림이었다. 꽃도 우리도 피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수십 장의 사진을 찍으며 우리는 서로에게 "참 예쁘다"라는 말을 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이어 도착한 수성당은 고요했다. 여행객은 수성당을 지키는 사람과 우리뿐이었다. 대나무밭과 담장, 오래된 기와, 정갈한 돌길이 샤스타데이지를 보며 들떴던 마음을 차분히 정리해 주었다. 마음에 가득한 말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그곳은 우리를 충분히 품어주었다.
말없이 내면을 정리해 주는 곳.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쉴 수 있다는 것. 고요 속에 있으니 내 마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들떠 있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았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적벽강. 수억 년 세월이 깎아낸 붉은 절벽, 바다와 맞닿은 웅장한 모습 앞에서 우리 모두 감탄을 했다. 오랜 세월 깎이고 부딪히며 이토록 단단하고도 아름다운 존재가 된, 붉은 절벽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지나온 시간들이 모두 너의 색이야. 그 무늬가 너를 만든 거야."라며. 그것은 여전히 멋진 우리 자신이었다. 깎이고 베인 상처는 흔적이 아니라 지금까지 지키고 살아온 삶의 증거였다. 우리는 여기 오기까지 때때로 무너졌고, 때로는 스스로를 깎아낸 적도 많았다. 그 시간을 지나 이토록 말랑말랑하고, 단단하게, 이제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냈다.
"여기까지 온 내가, 우리가 기특해." 라며.
적벽강 바람이 옷깃을 흔들었다. 꽃향기 대신 파도 소리가 마음을 채웠다. 우리는 그 길을 걸으며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산길과 바닷길을 걸으며 우리는 말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산길이 있으면 바닷길도 있으니, 어느 길이든 걸어가면 돼."
여행은 낯선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니라 익숙한 나를 다시 알아보는 여정이었다. 네 여인은 적벽강 바람을 등에 지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하루, 충분히 웃었다. 충분히 자연을, 서로를 바라보았고, 충분히 나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다음 여행을 이야기했다. 걷는 한, 심장이 뛰는 한, 우리 생애 가장 젊은 날은 바로 오늘이라는 것을 알기에. 언젠가 더 이상 떠날 수 없는 날이 오더라도, 이 기억은 우리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추억이 있는 한, 우리의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깨달음 한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