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보지 못한 내가 있다

나의 뒷모습에는

by 담서제미


"으악, 이거, 이거 이건 아니라고 보오"


이번 여행의 의상 주제는 청바지가 되었든 어떤 것이든 편한 바지를 입고 떠나는 것이었다. 어릴 적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룰루랄라 소풍을 갔던, 그런 아이가 되어보자였다.


비록 지금은 내 손으로 준비를 할망정, 그런 마음으로 풀밭이든 어디든 아무 데서나 앉아 뒹굴어도 되는 복장, 그거면 되었다.


하지만 이게 뭐람. 뒷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던 우리는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같은 마음이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찍었던 뒷모습이 아니었다.


우아하게 살짝살짝 나풀거리던 모습이 담긴 뒷모습을 기대하며 사진을 본 순간, 동시에 "이건, 이건 아니라고 보오"를 외쳤다.


거기에는 바지를 먹은 엉덩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차마 그 사진을 올릴 수 없어 허리 아래로 잘랐다. 사진 자르기가 이렇게 유용할 수가.



그 사진을 본 미플러스포 넘버 투인 내가 "이게 뭐냐고. 똥꼬가 바지를 먹어버렸잖아."라고 하자, 세 명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돗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다 말고 숨넘어가게 웃는 네 명의 여자들. 우리는 사진 한 장에 초토화가 되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나중에는 배까지 아팠다.


사진 한 장에도 즐거워하는 미플러스 포 4인방의 의상에 대한 결론은, "앞으로는 산에 올라가지 않은 이상, 원피스나 긴치마로 대동단결한다"였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뒷모습이 찍힌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나의 뒷모습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건 볼 수도 없는 것이기도 했다. 사진을 보면 볼수록 그 속에 내가 있었다. 어색하고 낯선 내가 아닌 나의 모습이었다.


늘 앞모습만 바라봤다. 거울을 보면서도, 사진 속에서도 예쁜 모습을 보이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미소를 지었다. 때로는 억지 미소까지.


하지만 뒷모습은 정직했다. 솔직했다. 숨기지 않았다. 모든 삶의 무게들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것은 나이테 같은 시간들이었다. 윗목에, 어깨선에, 엉덩이에 그 모든 것이 스며 있었다.


그 모습은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사진에 담겨 있지 않았다면, 거기에 담긴 시선이 아니었다면 나는 나의 뒷모습이 어땠는지 몰랐을 것이다. 얼마나 쓸쓸했는지, 때로는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건 오직 타인의 시선 속에만 있는 나였다. 내가 걷고 있을 때, 앉아 있을 때, 그 모든 순간 내 뒷모습은 타인의 기억 속에만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남이 기억하는 나로 아주 오래 살아가고 있다. 등을 돌리고 있는 순간에도 세상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뒷모습에는 거짓이 없다. 애써 웃으며 감추고 있던 피곤도 축 늘어진 어깨에 묻어나고, 휘청거리는 허리에 쓸쓸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나지 않은 희망은 발끝에 남아 있다.


새벽에 일어나 미플러스 포의 여행기를 쓰려고 놀이터에 앉았다. 하지만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 나를 붙잡았다. 젊어서는 무심코 지나쳤을 한 장의 사진이 이제는 삶의 진한 여운처럼 느껴진다.


사진 속에 들어있는 찰나의 순간들, 미플러스 포 네 명의 웃음소리, 그것을 따라오던 빛과 그림자, 함께 걷던 숨결까지.


뒷모습은 지나온 모든 길들이 녹아내려 응축된 말 없는 시간들의 초상이었다. 우리의 뒷모습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다는 건, 그 순간 우리는 우리만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했다는 것이기도 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즐거움으로 남기를.


그 사진 속에는 지금껏 걸어온 우리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말이다. 그 뒷모습이 어쩌면 가장 진실한 나의, 우리의 초상일지도 모른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의, 우리의 뒷모습이 정겨웠다. 농축된 삶이 들어 있는 그 모습이. 참 고맙다.


<깨달음 한 줄>


뒷모습에는 내가 보지 못한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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