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씩 깊어가는 중이다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

by 담서제미

"어디부터 갈까요? 득량만이 훤히 보이는 곳, 아니면 성림정원"


"일단 득량만을 볼 수 있는 곳부터 가자"


보성 윤제림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 주월산이 있다는 것도 윤제림 안에 성림정원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정확하게 알았다.


주월산 가는 길은 구불구불했다. 올라가고 내려오며 차가 마주치면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 대는 한쪽에 비켜서서 기다려야만 움직일 수 있는 곳. 자동차는 미플러스포 네 명의 응원을 받으며 주월산 정상에 있는 주차장에서 몸을 풀었다.


주월산 정상에서 득량만을 바라보며 우리는 환호했다.


우와, 우리 눈앞에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탁 트인 시야는 청량음료를 마신 듯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했다. 구불구불한 산길 끝에서 만난 득량만은 신비로웠다.


안개에 갇힌 그곳은 산도, 바다도, 하늘도, 땅도, 하나였다. 경계를 나눈다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모든 것이 잔잔했다.


구름에 숨어버린 해 사이로 퍼져 나온 햇살이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 저 멀리 물결 위로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것은 한 폭의 커다란 수묵화였다.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잊어버린 사람 서 있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느끼는 감정은 같았다.


"참 좋다."


그 말조차 눈앞에 펼쳐진 풍경 속으로 스며들었다. 주월산에서 바라본 득량만은 아득히 떨어져 있는 먼바다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들 마음 안에 쌓여 있는 그리움의 풍경이었다. 저 멀리 수평선에는 젊은 날의 꿈이 있었다. 그 너머 바닷길에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마냥 걷고 싶었던 모래 길이 있었다.


구름을 머금은 하늘 위로 한 마리 새가 날아올랐다. 구름이 몰려왔다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득량만의 숨결 안에서 한 폭의 그림처럼 우리 앞에 나타났다.


꿈결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마음에 담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윤제림, 성림정원은 침묵의 정원이었다. 그 안으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숲은 모든 소음을 삼켜버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과 꽃, 마음의 살랑거림만이 공중에서 화음을 만들었다. 다양한 색깔의 수국은 색으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보랏빛의 은은함은 세월의 무게를, 하얀 수국은 순수했던 유년의 기억을, 분홍 수국은 첫사랑의 두근거림을 품고 있었다.


수많은 계절을 지나 여기까지 온 그 발자국 위로 바람과 햇살이 내려앉았다. 꽃길과 그늘, 쨍한 햇살이 내리비치는 길을 번갈아 걸었다. 그것은 마치 삶의 길처럼 여겨졌다.


"여기 서봐"


"어디, 어디"


"이쁘다, 이뻐"


서로를 불러 세워 사진을 찍고 웃음으로 화답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꽃이 되어주고 있었다.


일주일간 각자의 삶을 살다, 이렇게 만나 서로의 마음속에서 위로가 되고 있었다. 진짜 이야기는 주고받는 말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짓 속에, 침묵 안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한 송이 수국은 꽃이 아니라 삶이었다. 바람과 햇살을 받은 꽃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다고 해도, 그건 시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는 것이었다. 우리 삶처럼.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우리의 여행 원칙 중 하나가 '사람이 없을 때 고요히 자연의 숨결을 느낀다'였다. 슬슬 사람이 많아지자 네 명이 동시에 '이제 가자'라고 했다.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삼림 정원 밖에 있는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돗자리를 깔고, 각자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쨍한 코발트블루 보자기 위에 꺼냈다.


누군가는 찰밥을, 누군가는 음료와 커피를, 누군가는 전을, 누군가는 오이와 참외, 파프리카, 방울토마토를.


찰밥에 싸 먹을 김과 감태도 한자리 차지했다. 고구마와 감자까지 음식마다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가 모여 우리만의 한 상이 차려졌다.


미플러스 포의 운전자이자, 기획자이자, 우리 모임의 공식 사진작가이기도 한 막내가 썰어서 가져온 오이와 양파를 양념장에 섞어 즉석에서 무쳤다.


정자에 앉아 먹는 한 끼 점심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일이었다. 밥을 먹으며 우리는 뒷모습이 찍힌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렸고, 다음 여행 장소와 복장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눴다.


유쾌했다. 따뜻했다. 그 모든 게 눈물 같았다. 너무 웃어서 흘러내리는 눈물.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때,


내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


내 손으로 운전할 수 있을 때,


움직일 수 있는 그날까지 우리는 함께하자며 다시 한번 더 도원결의를 했다.


우리는 오늘도 바다를 품은 산 정상에서, 꽃으로 가득한 숲길에서, 햇살을 머리에 인 정자에서, 서로의 위로와 진심이 되었다.


피어나는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지는 꽃도 품위가 있어야 한다. 무르익어가는 우리는 조금씩 스러져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깊어지는 중이다. 우리에게는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다.


바지를 먹은 엉덩이 사진에 박장대소를 하고, 각자 가져온 음식을 서로 나눠먹으며, 수다를 떠는 순간들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다 담을 수 없다. 하지만 마음에 담긴 그 순간은 어떤 인화지 보다 더 오래 남아서 살아갈 힘이 되리라.


미플러스 포, 네 여자의 여행은 사진 한 장, 꽃 한 송이, 웃음 한 번에도 일주일을 다시 살게 만드는 마법이 된다.


삶은 그런 것이다. 이처럼 말랑말랑하게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나른한 여름 오후 햇살처럼, 느긋하게 순간을 즐기며 하품하듯 살아가는 것이다.


<깨달음 한 줄>


우리는 조금씩 스러져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깊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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