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처럼 피어나고

대숲처럼 고요하게

by 담서제미


"나 손가락 실밥 풀었어."


"놀러 가기 전에 풀어서 다행이네."


"더워서 놀러 못 다닐 거 같아."


"꽃 보러 가려면 무조건 오전에 가야 되겠구먼."


"그래야 될 거 같아요. 더 일찍 출발하시게요."


"그럼 더 더워지기 전에 무우루 다녀올까요?"


여행을 가기 전부터 우리 카톡은 불이 났다.


한 주를 건너뛴 미플러스 포 네 여자의 화요일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가기 전부터 설렘과 함박웃음 속에서. 무우루 담장에 핀 능소화


구례 무우루.


카페는 쉬는 날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무릉도원 같은 담장에 드리운 주홍빛 능소화 앞에서 환호했다.


"큰 언니부터 얼른 서봐요."


우리 모임 공식 사진작가인 막내가 능소화 앞에 우리를 불러 세웠다. 덥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우리는 넋을 놓고 있었다. 능소화는 봄꽃이 다 지고 나서야 조용히 피어난다. 오래된 돌담을 타고 피어난 능소화는 기억처럼 붉고 다정했다. 너무 일찍 피지도, 너무 늦게 지지도 않는 그 꽃은 스스로 시간의 중심을 아는 듯했다.


혼자서는 설 수 없고, 기댈 곳이 있어야 피는 꽃, 담장이나 받침대를 의지 삼아 피는 능소화는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우리 같았다. 사랑 같고 인생 같은 꽃. 나에게 능소화는 여름 편지였다. 담장에 드리운 그 꽃은 화염이었으나 불처럼 뜨겁지 않았다. 따뜻했다. 켜켜이 쌓인 시간에 젖은 벽을 타고 피어난 붉은 숨결, 그것이 능소화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능소화를 좋아했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이고 담장에 드리운 꽃잎은 언뜻 보면 화려하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슬픔이 들어 있었다. 오랜 그리움 같은.


가을과 겨울, 봄을 지나 여름이 되어야 피는 꽃.


그것은 간절한 그리움이었다. 그 마음은 그 자체로 고고했다. 고택 담장에 드리운 능소화 앞에 서면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저물어가는 저녁 어스름한 빛에 드리운 꽃잎 앞에 서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진한 애틋함이 밀려왔다.


지나간 시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같은. 나에게 능소화는 그런 꽃이었다. 여름이면 반드시 만나야 하는.

그것은 기다림의 꽃이었다. 그 기다림의 시간, 그 점이 우리와 닮아 있었다.


미플러스 포. 우리도 이제 인생의 여름을 지나고 있다. 뜨겁게, 조금씩 지쳐가지만 아직 저물기에는 이른 생의 한가운데 서 있다. 능소화는 담장을 타고 오른다. 누군가 받쳐주지 않으면 피어날 수 없는 꽃. 기댈 곳이 없으면 꽃이 되지 못하는.


우리는 지금 서로에게 다정한 담장이자 줄기다. 인생의 한 계절을 서로 의지하며, 능소화가 흐드러진 담장 아래서 우리는 각자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세 계절을 지나고 뜨거운 태양 아래 모습을 드러내 불꽃처럼 피어나는 꽃. 미플러스 포의 여행도 그렇게 피어난다. 서로를 담장 삼아, 마음을 기대고 삶을 나누며.


무우루에서 능소화와 함께한 시간은 그저 사진을 찍고 꽃을 본 것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 속에 들어 있었고, 그것은 추억이었다. 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답다. 그것은 기다림 끝에 피어나기 때문이다. 늦꽃인 우리를 닮은 능소화. 그래서 더 애틋하다.


대 숲처럼 고요하게


천 개의 연필처럼 곧고 높은 대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7월 햇살이 대나무 잎 사이로 사선으로 내려왔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서걱대는 소리가 났다. 은은한 죽향과 함께 걷는 그 길 옆에는 섬진강이 흘렀다.


도란도란 속삭이듯 흐르는 물결, 그 옆에 펼쳐진 대숲 길은 세상의 소음을 잊게 해주는 또 하나의 세상이었다. 대숲에 부는 바람은 지나갈 때마다 삶의 먼지를 털어냈다.


걷는 발걸음조차 조심스러운, 그것은 정적이 아니라 정중한 고요였다. 고요한 길을 걷는 것은 마음의 숲을 지나는 것이다.


말보다는 깊은 고요가 흐르고 있는 대숲. 빛조차도 숨을 죽인 채 그 시간 속에 들어와 있었다. 어느 순간 대숲이 우리를 시간 밖으로 데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발끝으로 느끼는 길과 속삭이는 대숲만이 존재하는 세계. 대숲은 말이 없었다. 바람은 맑았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요. 그 고요 속에 우리도 잠시 머물렀다.


그 고요를 깨운 건, 새소리도, 뜨거운 태양도 아니었다. 그것은 모기였다.


"아, 가려워."


"나도, 나도."


대숲에 경건한 고요도 강력한 모기 한 방에 무너졌다. 모기에 장렬히 헌혈을 하고 우리는 그곳을 벗어났다.


뜨거운 능소화와 고요한 대숲. 대조적인 풍경이었지만 깊이는 같았다. 능소화는 우리에게 기다림을, 대숲은 우리에게 고요 속에 머무는 법을 알려주었다.


뜨겁게 피어나고

조용히 견디는 거.


능소화 앞에서는 환호했고 대숲에서는 고요했다.


꽃이 피는 시간은 짧고, 대숲에서 대나무가 자라는 시간은 길다. 우리 인생도 피어나고, 사라지고, 또 피어나는 시간을 반복한다.


능소화는 꽃말처럼 '기다리라'라고 하지만 대숲은 '그저 여기 이대로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기다림과 존재. 능소화의 불꽃같은 사랑과 대숲의 고요한 믿음. 우리 인생은 능소화 같은 뜨거움과 대숲같이 평온한 그 사이 어딘가를 걷는 여정이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서로에게 담장이 되어주고 그늘이 되어 준 시간들을 떠올린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 함께 걷는 길 위에서 미플러스포 네 여자의 여행은 지금도 자라고 있다.


능소화처럼 피어나고, 대숲처럼 고요히 뿌리내리며.


<깨달음 한 줄>

우리 인생은 능소화처럼 피어나고, 대숲처럼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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