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는 대로
"여행 다녀와서 9월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리겠다고 해 놓고 왜 안 올려."
"아직 9월이 안 지났잖아."
"그게 말이 돼. 글 내내 기다리고 있는데, 써서 올려야지."
"그렇지 않아도 담주부터 올리려고 해."
노트북을 앞에 두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여행을 다녀왔으니 이제 글을 쓰라는 거다. 여행 가기 전에는 거의 매일 블로그에서 볼 수 있었던 글도 뜸하게 올라오고, 9월이 되었어도 브런치에 글이 안 보이니 글을 기다리는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거였다.
"물론 지금 머리가 복잡해서 잘 써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써서 올려줘."
라며 동생은 전화를 끊었다.
내 글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글이 안 올라오니 하루 일과가 덜 끝난 거 같다며, '언제 글 올라와요?'라는 후배 문자며, 무언의 압력이 이곳저곳에서 날아들었다.
과연 나는 글을 쓰지 않고 있었던가?
여행하는 내내 글을 쓰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언어들이 때로는 담백하게, 때로는 현란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활자가 되지 못한 글들이 어떤 날은 허공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고, 어떤 날은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단어들이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단지, 펜을 들어 글을 안 썼고 자판기를 두드리지 않았을 뿐 매 순간 글춤이 글밭을 누비고 있었다. 적당한 밭에 가장 적합한 작물이 심어질 순간을 기다리며.
어디를 가나 늘 그랬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문제가 생겼다.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물론 불가피한 사정이 생겨 집중할 여력이 없기도 했지만, 쓸려고 작정을 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빙빙 돌고 있는 글들을 적당한 글밭에 심기만 하면 되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손발이 로그아웃 되어버렸다.
식물에 물을 주다가도 멍
해금 조율을 하다가도 멍
청소를 하다가도 멍
밥을 먹다가도 멍
길을 걷다가도 멍
되돌아본 내 모습은 퇴직 전이나 다름없었다. 끊임없이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단 한순간도 나를 가만히 놔두질 못하고 있는, 쉼을 잃어버린 내가 보였다.
퇴직 전에 살았던 목표지향적인 삶을 퇴직 후에도 이어가고 있었다. 단지 퇴직 전에는 일에 대한 목표달성에, 퇴직 후에는 스스로 세워놓은 내 목표를 위해.
'이제 일이 아닌 온전히 네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해 가니 이보다 더 행복한 것이 어디 있다고 그래? 이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물론, 이 말에 동의를 한다. 이렇게 살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문제는 퇴직하자마자 잠시도 내면이 성장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사무실에서 벗어나자마자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고 몸이 회복되자마자 글을 쓰고 문화센터에 등록해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까지는 좋았다.
시간 나는 대로 맨발 걷기를 하고 산에 올라가 명상을 하며 나름 나에게 쉼을 주고 있다 여겼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그건 쉼이 아니었다.
단 한순간도 쉴 틈을 주질 않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였고, 늘 머릿속이 분주했다. 퇴직 후, 2024년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정해놓고 하나씩 지워나가는 데 급급해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미처 정리되지 못한 그림자는 저만치 놔두고 나만 냅다 달렸던 거다.
퇴직과 동시에 떠났던 이탈리아, 7월~8월 중부유럽, 해금과 캘리그래피 배우기, 블로그 글쓰기, 브런치 작가 되기, 전자책 출간 등등
버킷리스트라는 허울로 치장된 나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이었다. 목표를 정해 꾸준히, 정해진 루틴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왠지 끝나버릴 것만 같은, 그 삶에 갑자기 숨이 막혔다. 그건 흡사 우리 안에 갇혀 사육당하고 있는 동물 같았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일어나. 이제 밥 먹어, 글 쓸 시간이야. 글 써야지, 이제는 운동해야지, 오늘도 루틴대로 했군, 잘했어. 갖은 유혹을 이겨낸 날 칭찬해.
뭐야, 뭐야, 오늘은 일어날 시간에 일어나지 않다니. 글도 안 썼어. 운동도 안 하고. 도대체 왜 그러는데. 하기로 했으면 해야지. 하루 안 하게 되면 이틀 안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계속 안 하게 되는데, 너 그렇게 살고 싶어. 그러면 안 되지.
두 자아가 끊임없이 분열을 거듭하며 타협과 절충을 반복하던 그 삶을 여전히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좋아했던 것들이 부담이 되었고, 울타리가 아닌 쇠창살이 되어 버렸다.
여행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사는 것이 내 삶이라 여겼다.
재미있었고, 행복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후 그 모든 것들이 숨이 막혔다. 그건, 또 다른 직장이었다. 만들어진 울타리 안에서 다른 세상은 보지 못한 채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던.
퇴임식을 하고 사무실을 벗어난 지, 8개월이 지났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많은 나이인 세 번째 스무 살.
이제는 목표도 루틴도 아닌, 흘러가는 대로 몸과 마음을 맡겨도 되지 않을까?
이제는 나 스스로에게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될 자유를 허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미친 듯이 글자들이 글춤을 추는 날에는 글밭에 글을 뿌리면 되고
사명감, 소명의식 뭐, 이런 게 생각하지 말고 그저 내버려 두자.
왜냐면, 알버트 카무스가 '한겨울에, 나는 내 안에 영원히 존재하는 여름을 발견했다.'라고 했던 것처럼 나는 내 안에 서로 다른 계절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냥 이대로 흘러가는 대로 내 버려두면, 그 위에 길을 만들어가리라는 것을.
공지) 화, 목 연재를 월, 목으로 변경합니다. 세 번째 스무 살을 살고 있는 젊은 할미의 일상과 직업상담이야기를 번갈아가며 연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