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청농원에서 배운 감사의 시간과 삶의 온도
청농원 카페에 앉아 바라본 세상은 분홍빛 안개로 가득했다. 햇살이 핑크뮬리 사이로 스며들며 마치 꿈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분명 발은 땅에 닿아 있는데도 핑크빛 구름 속을 걷는 듯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서로에게 빚이 되어주고 있는 미플러스 셋째와 사진작가 막내>
멀리서 보면 연분홍 구름 같고, 가까이 다가가면 실처럼 고운 잔털들이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춤을 추었다. 바람이 지나가면 꽃들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 사이로 붉디붉은 백일홍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한여름의 열정을 다 쏟은 듯, 꽃잎 하나하나가 뜨겁게 빛났다. 분홍과 붉음이 섞인 그 장면은 마치 젊음과 노년이 손을 맞잡은 풍경 같았다. 부드러움과 강렬함이 어깨를 나란히 한, 인생의 색이었다.
핑크 말차라떼의 달콤 쌉싸래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참 감사하다.’ 고.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을 가진 셋째가 말했다.
“언니, 나는 매 순간순간이 감사하네.”
이것이 바로 이심전심. 이 풍경을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건강,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 이곳까지 데려온 시간의 선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지금이 딱 내 삶의 크기였다. 그저 모든 게 고요했다. 평화로웠다. 세상이 우리를 위해 잠시 멈춰 선 듯했다.
“그리고 언니,” 셋째가 이어 말했다.
“나는 지금 내 그릇이 딱 좋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딱 이 정도가 좋아. 나에게 맞는 그릇, 종지든, 국그릇이든, 밥그릇이든 그냥 거기에 맞춰 살면 되는 거잖아. 살아보니 그릇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더라. 크기가 어떻든 내가 잘 맞춰 살면 돼.”
그 말은 그냥 흘러나온 말이 아니었다. 삶을 오래 견디고, 스스로를 단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세월을 갈고닦아온 삶이 농축되어 있었다.
<사진작가 막내가 찍었다>
그 말이 맞다는 듯, 꽃들이 바람결에 출렁였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셋째 말처럼 삶은 결국 그릇 같은 것이라고. 누군가는 종지로, 누군가는 밥그릇으로, 또 누군가는 큰 국그릇으로 산다. 중요한 건 그 크기가 아니었다. 그 안을 어떻게 채우느냐였다.
"그러니 그릇의 크기를 탓하지 말자."라는 셋째의 그 한마디 속에 인생의 철학이 들어 있었다.
바람이 고창 청녹원 꽃밭을 지났다. 핑크뮬리는 갈대처럼 흔들렸다. 그 위로 백일홍 몇 송이가 떨어졌다. 그 순간 하늘과 땅의 색이 서로 스며드는 듯했다. 인생의 여러 계절이 한자리에 모여 춤추고 있었다.
핑크뮬리는 흔들림의 아름다움을, 백일홍은 뜨거운 존재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흔들리면서도 피어나고, 지면서도 다시 살아나는 그 꽃들은 우리였다.
내 삶의 그릇이 크든 작든, 그 안에 따뜻함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핑크뮬리처럼 부드럽게 흔들리고, 백일홍처럼 마지막까지 뜨겁게 피어나는 삶. 그게 우리가 배워야 할 자연의 지혜였다. 청농원에서 마주한 바람과 꽃, 웃음 속에서 우리는 알았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온도라는 것을.
<깨달음 한 줄>
삶은 핑크뮬리처럼 흔들리며, 백일홍처럼 피어나는 것. 결국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