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주황빛 자유를 입다

곡성 황화코스모스밭에서 만난 인생의 가을

by 담서제미

그곳은 이름처럼, 동화 같았다. 마치 주황빛으로 물든 코스모스 동화 속 세상에 우리가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잔잔한 바람은 부드럽게 꽃잎을 건드렸다. 그때마다 꽃들은 수줍은 듯 속삭이며 우리를 반겼다.


하늘은 은은한 잿빛과 청아한 푸른빛이 섞여 있었고, 안개 낀 산맥은 멀리서 부드러운 회색 실루엣으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 모든 풍경이 마치 오래된 한 편의 동화 속 세상처럼, 느리게, 깊숙이 마음속으로 흘러들었다.


곡성 충의공원, 내 동화정원. 3만 평의 드넓은 정원은 한 폭의 꿈이었다. 노랑보다 깊고, 붉음보다 따뜻한 주황빛 코스모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속에 서 있으니, 마치 세상이 잠시 멈춘 듯했다.


시간도, 나이도, 근심도, 모두 저 꽃잎 사이로 스며 사라졌다.


“이번 주엔 가지.”
그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늘 그렇듯 미플러스포 대화방에 총무가 만날 시간을 알렸다. 그 순간 셀렘이 먼저 달려왔다. 차 안에서 이어진 수다와 웃음이 길이 되어, 우리는 곡성으로 향했다.

KakaoTalk_20251021_114331144_06.jpg

도착하자마자, 바람이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바람 속엔 꽃향기가 섞여 있었다. 달콤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그저 자연의 숨결 같은 향기. 그 향기에 마음이 녹아들었다.


우리는 나란히 섰다.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앞을 바라보았다.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주황빛 코스모스의 바다, 뒤로는 안개 낀 산맥이 파도처럼 겹쳐 있었다.


하늘과 땅 사이, 바람과 빛 사이에 우리의 존재가 고요히 떠 있었다. '이게 바로 인생의 가을이지.' 나는 독백처럼 인생의 가을을 맞이했다. 가을은 풍경과 어울려, 마치 오래된 시 한 구절처럼 마음에 남았다.


가을은 늘 그렇게, 화려함 뒤에 쓸쓸함을 숨기고 있었다. 그 쓸쓸함이 오히려 인생을 더 빛나게 만드는 법이다.


우리들의 공식 사진작가 막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말했다.

“여기 서봐요.”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했다. 그 순간, 셔터 소리와 함께 세상이 멈춘 듯했다. 사진 속 우리는 꽃밭의 주인공이었다.


코스모스 사이에 피어난 네 송이의 인간꽃. 세월이 그려준 아름다운 뒷모습이었다. 꽃길을 걸으며 우리는 몇 번이나 걸음을 멈췄다. 바람이 스치면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그 사이로 우리의 웃음이 흩날렸다. 어깨에 닿은 온기가 전해졌고, 그 따뜻함이 마음을 감쌌다.


사진 속 우리의 뒷모습은 말없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은 우정, 바람 속에서도 함께 선 시간들.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풍경이었다.


누구는 추억을 이야기했고, 누구는 앞으로의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은 결국 한 곳으로 모였다.


‘지금, 여기에 있음의 기쁨.’


정원 한편,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사진너머 풍경이 마음 한가운데로 스며들었다. 이 나이라서 가능한 행복. 그 말이 바람에 실려 코스모스 사이로 흩어졌다. 흐린 하늘사이로 해가 얼굴을 내밀자 꽃밭은 더욱 깊은 주황빛으로 타올랐다.

KakaoTalk_20251021_114331144_09.jpg

꽃잎 끝마다 하루의 빛이 머물었다. 바람은 그 빛을 살짝 흔들었다. 그 장면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저 숨만 쉬어도 행복한 순간, 가을이 우리 안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는 온전한 ‘자유인’이었다.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나이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 바람 속에서, 코스모스의 향기 속에서 우리는 잠시, 완벽히 자유로웠다.


세상 전체가 거대한 화폭이었다. 그 위에 우리가 서 있었다. 이렇게 익어간다는 게, 이처럼 멋질 줄이야.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옛날의 그 집〉


머릿속에 작가의 또 다른 말이 스쳤다.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곡성 동화정원, 황화코스모스밭에서 우리는 그 말처럼 ‘편안한 자유인’이었다.


차로 돌아오는 길, 큰언니가 말했다. “다음 주에는 어디 간다고.” 그 말에 모두 웃었다.


끝이 아니라, 이어지는 계절처럼. 우리의 인연도, 우리의 시간도 그렇게 계속 피어날 것이다.


<깨달음 한 줄>
삶은 결국 한 편의 동화다. 바람에 흔들리며 피어나고, 때로는 스러지지만, 그 모든 순간이 모여 황홀한 한 장면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길들여진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