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
"너는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되었어."
나는 이미 길들여져 있었다. 미플러스 포에.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져 있었듯이.
새벽에 일어나 깜짝 놀랐다. 내가 옷장 앞에 서 있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지. 아, 이거면 좋겠다.'
내 무의식은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매주 화요일에 떠나는 미플러스 포. 그녀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봄부터 시작한 미플러스포 네 여자의 화요여행을 여름동안 잠시 쉬었다. 쉬는 동안 매주 화요일이면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뚫린 듯, 바람이 새 나왔다. 허전했다.
새하얀 파스타 데이지가 펼쳐졌던 변산 마실 길, 지리산 자락을 오르며 땀과 웃음으로 수놓았던 지리산 허브랠리, 보성 윤제림 수국 길을 걸으며 마주한 찬란한 여름빛, 신비한 득량만의 고요, 정자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정을 나누던 시간, 사진 한 장에도, 스쳐가는 바람 줄기에도 우리는 함께였다.
그 모든 순간에 우리는 같이 있었다. 어느새 나는 그들에게 길들여져 있었다. 길들여진다는 건, 익숙해진다는 말보다 훨씬 따뜻했다. 그것은 반복이 아니었다. 기다림이고, 관계였다.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여우 말처럼, 여행이 있는 날이면, 전날부터 마음이 들썩였다.
입고 갈 옷을 미리 정해 놓고, 기다리는 재미는 에너지 주스를 한꺼번에 서너 잔 마신 기분이었다.
함께 모여 사진을 찍고 서로를 챙기며
"여기 서봐, 이 길 너무 예쁘다. 찍자."
"어쩜, 이리 아름다울 수가."
"오늘 너무 멋진데."
그 말 하나하나가 나를 길들이는 언어였다. 우리 사이에는 어느새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생긴 호흡이 있었다.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읽는 감각이 있었다.
그렇게 길들여졌다. 여행을 쉰다는 것이, 공백이 아니라 우리 관계의 리듬 하나가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이게 이렇게 허전할 줄이야.
"어디로 갈까?"
"무얼 먹을까?"
"의상은 어떤 것으로 할까?"
그 모든 말들이 우리를 이어줬다. 함께해서 온전했던 여행.
이제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을 보내고 미플러스포 네 여자의 가을여행이 시작되었다. 잠시 휴지기를 가졌던 그 시간들을 보내고 다시 길 위에 선 우리들.
기다리는 동안 함께했던 그 모든 순간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웠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들과 함께한 모든 날들은 내 기억 속에 내 마음 저 밑바닥에 층층이 쌓여 있다. 사진첩을 열면 그날의 기억이 꿈결처럼 아스라이 떠오른다. 그 여행길에서 반짝였던 우리들의 모습이.
관계란 이렇게 서로에게 길들여지며 서서히 스며드는 거다. 따뜻한 온기를 가슴에 품으며 그때의 웃음과 눈빛이 사진처럼 기억 속에 저장된다. 그 기억은 여행이 끝난 후 감정으로 남아 훈훈함으로 온다.
여행을 쉬어간다는 건, 우리의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이 아니다. 한 장면을 넘기고, 두 계절을 보내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시간일 뿐이다. 그 빈자리를 소중히 간직해 다시 시작되는 순간, 더 깊이 서로를 길들이게 될 테니까.
이제 가을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길을 나서는 모든 순간이 꽃이 되리라.
<깨달음 한 줄>
진정한 길들임은 함께한 시간이 아니라, 서로를 그리워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