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의 무게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어라

by 담서제미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어라.'


이 말이 예전엔 그저 어른들의 잔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림이 되어 다가왔다. 살아온 세월이 쌓일수록,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몸으로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주말에 지인 결혼식이 있어 다녀왔다. 이 자리에서 말의 무게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말 한마디에 마음의 고요가, 사람에 대한 신뢰에 실금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그러지 않았던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다른 이에게 가슴에 비수가 딜 수도 있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보면서 무엇이 그렇게 변하게 했을까? 생각했다.


젊을 때는 말이 힘이었다. 내 생각을 드러내야 인정받고, 내 의견을 내세워야 살아남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목소리를 높이고, 논리로 무장하며, 상대를 설득하려 애썼다.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때의 말들이 얼마나 거칠고, 때로는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안다. 말은 칼이 되기도 하고, 향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은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나이 들어서 배운 건, 말을 아낄 줄 아는 지혜였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순간들이 많다. 굳이 내가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 사람의 마음이 저절로 풀릴 때가 있다.


입을 닫는다는 건 침묵으로 세상을 외면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세상을 더 깊이 듣는 일이다. 누군가의 말투, 눈빛, 한숨, 그 사이사이에 담긴 마음을 읽어내는 일.


그건 젊을 땐 몰랐던 어른의 감각이자, 세월이 준 선물이다. 주머니를 연다는 건 단지 돈을 쓰라는 뜻이 아니다. 나의 온기, 경험, 시간, 마음을 나누라는 말이다.


젊을 땐 아까워서 숨기던 것들이, 나이 들어선 나누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조그만 선물 하나,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음 담은 한 끼 식사. 그런 것들이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누군가의 하루를 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살아보니 세상은 경쟁보다 공감이 더 필요한 시대로 흐르고 있다. 누군가를 이기는 말보다, 함께 웃게 하는 말이 더 귀해졌다. 무엇보다, 나를 내세우기보다 상대를 먼저 세워주는 배려가 나이 든 사람에게 어울리는 품격이 되었다.


이제 나는 말보다 표정으로, 주장보다 행동으로,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불필요한 말은 줄이고, 대신 마음의 주머니를 더 자주 열자. 누군가의 손을 잡고,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일. 그게 어쩌면 인생 후반전의 가장 멋진 대화법일지 모른다.


바람이 분다. 가을 낙엽이 한 잎씩 떨어지듯, 내 안의 허세도, 불필요한 말도 하나씩 내려놓는다. 대신 그 자리에 따뜻한 마음 하나, 웃음 하나를 담는다.


이제는 그렇게, 말랑말랑하게 살아가도 괜찮다. 세상에 부드럽게 닿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깨달음 한 줄>
나이 든다는 건, 말이 줄고 마음이 커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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